한 소녀가 있었다. 그녀는 뚱뚱한 사람은 욕망의 대상이 되지 않으며, 욕망의 대상이 되지 않으면 상처받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 몸이 역겨워지면 남자들이 접근하지 않을 것이라는 확신으로 열심히 먹어서 키 191㎝, 몸무게 260㎏의 거구가 된다. 몸 안에 커다란 구멍을 메우듯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사용한 도구는 음식이었다. 먹고 또 먹으며 자신을 크게 만들고자, 몸을 완전하게 만들고자 하였다. 초고도 비만이 된 그녀는 몸이란 감옥에 갇혀버려 불행했지만 안전했다. 성폭력에 따른 고통이 한 사람의 일생에 얼마나 막대한 영향을 미칠 수 있는지 그리고 그 파장이 얼마나 오래갈 수 있는지 말해준다. 대부분의 시간동안 그 과거를 깊은 곳에 묻어두고 그 과거에 상관없이 자유롭게 살기를 소망하지만, 수십 년이 흘러도 그 과거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록산 게이의 이야기다.

게이는 12세였고 그때 사랑했다고 생각했던 소년과 그의 친구들에게 집단 성폭행을 당한다. 그녀는 그들에게 마구 함부로 다루어져도 되는 장난감이었고 아무것도 아닌 존재였다. 그녀는 무서워서 그러한 사실을 비밀로 간직해야 했고 수치와 굴욕을 아무에게도 털어놓을 수가 없었다. 그녀는 외로웠고 위로받고 싶었다. 음식은 즉각적인 만족을 주었다. 음식은 맛있었고 기분전환을 시켜주었다. 음식은 그녀의 손이 닿는 곳에 있었던 단 한 가지 위로였다. 더군다나 기숙학교에 혼자 살게 되면서 탐식을 말릴 사람이 주위에 아무도 없게 되자 피자 한판과 잠수함 만 한 샌드위치를 혼자 먹어치웠고, 그것이 학창 시절에 느끼는 그녀의 유일한 기쁨이었다. 학교생활은 방황의 연속이었고 소녀시절 숲속 오두막에서 벌어졌던 일을 떨쳐버리려 몸부림치며 뚱뚱한 몸 안으로 숨어 들었다.

현대사회에서 비만은 야만이며, 자기 통제력이 결여되어 있는 것으로 치부되듯이 몸은 하나의 계급성을 의미하기도 한다. 게이는 가냘픈 몸매가 부의 척도이며 사교적 생활에 중요한 가치가 된다는 점을 모르지 않았지만 사람들로부터 관심을 받게 되면 새로 찾은 익명성을 잃게 되고, 남자들이 자신을 해칠지 모른다는 두려움 때문에 살빼기를 포기한다. 그리고는 인터넷에 빠져 들어 깨어있는 대부분의 시간을 온라인에서 익명의 사람들과 대화하며 보낸다.

그 세계에서는 뚱뚱해도 문제가 되지 않았고, 사람들에게 자신을 그럴싸한 사람으로 소개할 수 있어서 사람들에게 마음의 짐을 내려놓을 수 있었다. 현실세계에서 그녀는 피부색 때문에, 사이즈 때문에, 자신의 외모에 대한 완벽한 무관심 때문에 남자아이들로부터 무의 존재가 되었고, 마음 깊은 곳에서는 지독한 로맨티스트였지만 낭만적인 사랑이야기의 주인공이 되고자 하는 그녀의 욕망은 현실과 괴리되어 있었다.

여성에 대한 폭력에 대한 문제는 인류사적으로 굳어진 가부장제 사회와 관련이 깊다. 록산 게이와는 달리 한강의 『채식주의자』에서 주인공 영혜는 육식거부를 통해 가부장제 사회의 폭력성에 저항한다. 그녀는 어릴 때 아버지로부터 구타당한 경험, 잔인하게 개를 죽이고 그것을 먹는 아버지의 폭력성을 떠올리며 육식을 거부하고 채식주의자가 된다. 육식은 가부장제 사회의 여성에 대한 남성의 폭력성을 의미하며 채식은 그 폭력성에 대한 저항으로써 마음에 비만을 초래한다. 게이의 음식에 대한 무서운 탐식도 동일선상에서 이해되며, 음식을 탐하는 것은 심리적 허기를 달래려는 욕망이다. 자신의 마음에 일어나는 수치감과 자기혐오의 심리가 억압 왜곡되면서 생겨나는데, 근본적인 원인은 사회·문화적 구조에서 찾아야 한다. 게이의 몸 불리기는 여성으로서 공간을 차지할 권리의 주장이며 해방의 고백이다.

여성을 비현실적인 이상에 구겨 넣으려 하는 천편일률적인 미의 기준은 바뀌어야 하며, 일반적으로 여성에게 악의적인 문화, 여성의 몸을 끊임없이 통제하려는 비합리적인 기준에 록산 게이는 금기를 깨고 뛰쳐나오려 몸부림쳤다. 그녀에게 몸은 자신을 지키는 요새였다. 그녀의 허기는 몸과 마음, 심장과 영혼 속에 있었다. 인생은 대체로 자신들이 추구하는 방향으로 가기 마련이다. 우리는 많은 것을 원하고 심리적 허기로 가득 차 있다. 해로운 문화적 메시지는 우리들의 가치가 몸에 달려있다고 강조하지만 그러한 편협한 시각에서 벗어나야 한다. 인간의 존엄과 가치는 그 존재 자체로 숭고하다. 맹주완 아산문화재단 상임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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