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극 월동대원들의 1년간의 임무 중 가장 어렵고 힘든 일은 1년 동안 먹고 쓸 보급품의 하역이다. 남극으로 파견된 신참 대원들에게 제일 먼저 주어지는 가장 어려운 미션이라고 할 수 있다. 세종기지는 큰 배가 부두에 접안할 수 없기 때문, 해안에서 떨어진 해상에 배를 세우고 고무보트로 움직이는 무동력 바지선을 이용해 중량물을 육지로 옮겨야 하는데, 자칫하다 큰 사고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 차대는 연구시설과 숙소를 새로 짓는 대규모 공사를 하였기 때문에 평소보다 많은 양의 건설폐기물을 반출하고 유류보급을 받아야 했다. 건설 공사가 종료되는 2017년 4월 중순 아라온호가 보급품과 기름을 싣고 세종기지로 들어오기로 했다. 통상 4월부터는 `블리자드`라고 하는 눈폭풍도 자주 일어나고 기온도 내려가기 때문에 밖에서 장시간 작업하기가 쉽지 않다. 대부분의 대원들이 하역 경험이 없었기 때문에 배가 들어오기 전 하역의 감을 익히기 위해 모의 훈련을 여러 번 실시했다. 하역과 선적을 위한 인원을 부두, 바지, 보트에 적절히 배분하고, 가장 경험이 많은 대원을 바지선에 배치했다. 기우뚱거리는 바지선 위에 컨테이너의 위치를 잡고 고정을 하고, 또 보트까지 통솔해야 하기 때문에 숙련자가 아니면 하기 힘든 일이다. 몇 번의 모의 훈련을 통해 하역에 대한 자신감이 생기고 마음의 준비가 되었다. 4월 13일 오전 7시 드디어 아라온호가 보이기 시작했다. 4월 15일 출항 예정이었기에 이틀 안에 모든 하역을 끝내야 했다. 아라온호가 기지에 도착 하자마자 몇몇 월동대원들과 아라온호에 올라가 승조원들과 하역 작업에 대한 회의를 마치고, 9시부터 하역을 시작하였다. 날씨가 나쁘면 어쩔 수 없이 날씨가 좋아지기만을 기다려야 하는데 날씨가 좋았던 것이 큰 행운이었다. 막상 하역을 시작하니 연습했던 것과는 많이 달랐다. 컨테이너가 무거워서 바지선에 2개의 컨테이너를 실으니 균형이 잘 잡히지 않았다. 계획을 변경하여 안전을 위해 한 번에 한 개씩만 옮겨야 했다. 예상보다 늦은 자정 무렵에야 보급품 하역을 마칠 수 있었다. 하지만 아직 끝이 아니다. 더 어려운 유류하역이 남아있다.

애초에는 물품 하선적 후 곧바로 유류 하역을 계속하는 것으로 계획했지만, 야간작업의 위험성과 대원들의 심신 상태를 고려해 다음날 유류 하역을 이어가기로 했다. 몇 시간의 꿀 같은 휴식을 취하고 4월 14일 아침 7시 30분부터 안전 교육을 시작으로 작업이 재개됐다. 지구상 모든 지역이 마찬가지겠지만, 특히 남극은 청정 지역이기 때문에 하역시 유류 유출이 일어나지 않도록 모든 기지들이 철저하게 준비를 한다. 유류를 기지로 옮기기 위해 기지의 유류탱크와 아라온호 유류탱크까지 호스를 연결해다. 사전에 유류 호스의 압력 테스트를 통해 구멍이 있는지 수차례 점검을 실시했지만 또 한 번의 테스트를 마치고, 드디어 9시 40분부터 유류 하역이 시작됐다. 1년치 사용량인 총 640톤의 유류를 받으려면 약 12시간을 쉼 없이 받아야 한다. 펌핑 용량이 크지 않아 일반 보급보다 몇 배의 시간이 더 소요된다. 이제부터는 유빙과의 싸움이다. 유류호스에 유빙이 접근하면 유류 호스가 유빙을 피할 수 있도록 계속 방향을 바꿔줘야 한다. 오전 내내 순조롭게 이루어지던 유류 공급이 오후 3시부터 풍향이 바뀌면서 커다란 유빙이 속속 유류호스 쪽으로 밀려왔다. 유빙이 호스에 걸리면 이음부가 빠져 유류유출이 일어날 수 있기에 한시도 눈을 뗄 수 없었다. 유빙의 크기가 크면 클수록 노동의 강도와 긴장감은 커진다. 건장한 대원 4~5명이 붙어 유빙을 피해 무거운 호스를 이리 옮기고 저리 옮기며 사투를 벌이는 사이 다음날 새벽 2시경 유류보급이 무사히 끝이 났다. 유류 호스를 정리 하는데 3시간이 또 소요되어 새벽 5시가 다 되어서야 모든 대원들이 잠자리에 들 수 있었다. 하역 작업 내내 이어지는 긴장과 육체노동에 체력은 그야말로 완전 고갈 상태였지만, 1년간 쓸 물품이 주는 풍요로움과 우리가 해냈다는 생각에 그만큼 보람도 컸다. 그래서 하역을 남극 월동의 꽃이라 하는 것 같다. 김성중 극지연구소 책임연구원

<저작권자ⓒ대전일보사. 무단전재-재배포 금지>

저작권자 © 대전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