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르도 와인을 칭할 때 샤또 라뚜르나 샤또 무똥 로칠드는 이름 앞의 샤또를 빼고 불러도 무방하지만, 마을 이름과 동일한 샤또 마고(Margaux)는 그냥 마고라고 하면 마을 이름과 혼동되기에 항상 샤또 마고로 칭합니다. 화려한 향, 우아한 맛, 비단 같은 질감으로 `와인의 여왕`으로 일컬어지는 샤또 마고의 명성은 이미 18세기말 향후 미국 3/4대 대통령으로 선출된 토마스 제퍼슨이 프랑스 대사로 근무하면서 1784년산 샤또 마고를 `프랑스 최고의 와인`으로 분류했었다는 기록에서도 확인됩니다. 1855년 메독와인 등급 선정시 진행된 파리 블라인드 테스트에서 1등급 와인 4개 중에 샤또 마고만 20점 만점에 20점을 받았었습니다.

샤또 마고를 좋아해서 손녀 이름을 마고로 지었다는 어니스트 헤밍웨이의 사례처럼 샤또 마고와 관련된 일화도 다양합니다. 1997년 와타나베 준이치 소설을 영화로 제작하여 21회 일본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감독상과 남·녀주연상 등 13개 부문을 수상한 영화 실락원의 파격적 러브 스토리의 결말에 등장하는 샤또 마고는 영화의 탐미주의적 성격을 한층 북돋아 주었고, 일본인들에게 선풍적인 인기를 누리는 와인이 되었습니다.

2차 세계대전 종전 후 패전국 독일이 프랑스에 공식적인 사과를 한 장소가 파리가 아닌 샤또 마고에서였습니다. 건축가 루이 꽁브(Louis Combes)의 고대 그리스 스타일의 설계로 1815년 지어진 마고 성은 1946년에 국가 중요 건축물로 지정되었고 `보르도의 베르샤이유`라는 별명을 받을 만큼 프랑스인들의 자부심이 실려 있습니다. 라벨 가운데 타원형으로 그려져 있는 이 건물은 와인 생산과 포도원 관리에 필요한 공간들을 적절히 배치해 심미적으로뿐 아니라 기능적으로도 높은 평가를 받습니다.

4세기가 넘는 동안 샤또 마고가 항상 최고 와인의 명성을 유지해온 것은 아닙니다. 1950년 지네스테(Ginestet) 가문에 인수되면서 품질이 급격히 하락하였고, 3등급 샤또 빨머(Palmer)에 떨어지는 평가를 받곤 했습니다. 다행이 1977년 펠릭스 뽀땡(Felix Potin)을 소유한 그리스계 유통사업자 앙드레 멘젤로풀로스(Andre Mentzelopoulos)가 인수하면서, `20세기 와인의 품질혁명`을 이끈 와인 양조가 에밀 뻬노(Emile Peynaud)의 컨설팅을 받아 대대적 투자로 포도원을 개선하여 1978년부터 이전과는 다른 와인을 만듭니다. 포도 품종 구성에 까베르네 쇼비뇽의 비율을 높이고 메를로의 비중을 낮추어 보다 견고한 스타일의 와인을 생산하기 시작했습니다.

제가 2004년 처음 맛본 1등급 와인은 클래식와인 모임에서 함께한 샤또 마고 1998입니다. 당시만 해도 고급 와인을 많이 만나지는 못해서 다른 와인과의 차이를 그다지 뚜렷하게 감지할 수 없었는데, 이후로 다양한 빈티지를 맛보면서 샤또 마고의 풍부한 아로마와 우아한 측면을 즐깁니다. 가장 기억에 남는 샤또 마고는 2012년에 마신 1990년산 매그넘(1.5리터)입니다. 딸기에서 체리까지 여러 과일향들의 달콤함과 향기로운 장미향에 나중엔 허브향까지, 같이 나눠 마셨던 분들의 표현대로 향기들이 정말 춤을 추는 듯했습니다. 더불어 맛과 질감과 여운까지 어우러져 완벽 이상의 면모를 보았었습니다.

샤또 마고는 작황이 아주 좋았던 최근 2015빈티지에 특별한 의미를 담았습니다. 그동안 변경 없이 유지해온 라벨을 붙이지 않고 2015년은 검은 와인병에 직접 금색으로 라벨을 그렸습니다. 마고 성을 건축한지 200주년이기도 하고, 셀러의 대대적인 개선작업을 진행하였고, 1983년부터 조인하여 1990년부터 디렉터를 맡아온 뽈 뽕딸리에(Paul Pontallier)가 2016년 3월 세상을 떠났기에 그를 추모하는 글귀도 병 아래 부분에 적었습니다. 신성식 ETRI 미래전략연구소 산업전략연구그룹 책임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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