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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재 이야기] 우리는 왜 과거를 필요로 하는가?

2018-04-25기사 편집 2018-04-25 17:07: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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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재에 대한 일을 하다 보면 자연스럽게 '도대체 우리에게 과거가 무엇인가' 하는 의문을 가지게 된다. 점점 더 빠르게 변화하는 요즘 세상에 앞만 보고 따라가기도 벅찬데 과거, 더구나 우리가 직접 경험하지 못한 먼 옛날까지 신경 쓴다는 것이 쉽지 않다. 그런데 문화재라니!

우리는 끊임없이 변화하는 시간과 공간 속에서 살아간다. 어제의 나와 오늘의 내가 다른 것은 나를 구속하는 환경이 시간과 공간적으로 변하기 때문이다. 시간적으로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의 삶을 풍요롭고 의미 있게 하기 위해서는 지금의 단초를 제공한 과거를 이해하고 이를 바탕으로 미래를 설계하는 것이 필수적이다. 현재를 있게 한 과거에 대한 이해 없이 현재의 우리 삶을 제대로 이해할 수 없으며 스스로에게 이해되지 못하는 삶은 정신적으로나 물질적으로 풍요로울 수 없을 것이다. 따라서 과거는 추억이나 향수의 대상만이 아니라 우리의 현실적인 삶 그 자체를 위한 필수품이다.

과거는 현재를 편안하게 하고 친근감을 주며 현재의 태도와 행동을 정당화한다. 우리는 역사를 가짐으로써 우리가 누구인지 알게 된다. 또한 그것으로 인한 수많은 이야깃거리로 현재를 풍요롭게 장식한다. 살아남은 과거의 가장 빼놓을 수 없는 이점은 그것이 내뿜는 친근감이다. 한번도 본 적도 들은 적도 없는 낯선 환경은 우리를 불편하게 한다. 우리는 곧잘 어디서 본 듯한 옛것에서 편안함을 느낀다. 그래서 우리는 새로운 것에 옛것을 연상시키는 장식을 하곤 한다. 복고풍이 어느 장르에서나 이따금 유행하는 것은 과거가 발산하는 이런 매력 때문이다.

과거는 현재의 태도나 행동이 예전과 유사하다는 것을 확인해줌으로써 현재의 태도나 행동을 정당화한다. 역사적인 전례는 오늘날의 존재와 행위에 정당성을 부여한다. 판단의 근거가 모호할 때 전례는 어김없이 등장하여 문제를 해결하는 편리한 도구이기도 하다. '전례가 없는 일'을 마주치면 우리는 당황하고 불안해 한다. 특히 법원에서 판례가 뒤집어 지는 날이면 사람들은 무슨 큰일이라도 난 듯 호들갑을 떤다. 이는 우리의 과거가 부분적이나마 새로운 환경에서 부정되는 것이며 또한 우리를 일시적이나마 불편하고 불안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과거는 우리의 정체성에 긴요하다. 과거에 대한 인식의 결과인 역사의식은 사회와 국가에 대한 정체성을 높인다. 어제의 나와 우리에 대한 확신은 오늘의 나와 우리에 대한 확신을 위해 꼭 필요하다. 우리는 자신의 과거를 회상하고 확인함으로써 우리 자신에 대한 존재 의미와 가치를 깨닫는다. 대한민국헌법 전문은 "유구한 역사와 전통에 빛나는 우리 대한국민은 3·1운동으로 건립된 대한민국임시정부의 법통과 불의에 항거한 4·19민주이념을 계승하고…"라고 대한민국의 과거에 대해 언급하고 있다. 이는 대한민국의 정체성에 3·1운동과 4·19혁명이라는 역사적 사건이 필수적이기 때문이다. 최근 한국과 중국간에 이슈화된 고구려에 대한 문제도 국가의 정체성이 과거와 얼마나 밀접한 관계가 있는지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하나의 사례라 할 수 있다.

또한 과거는 현재를 풍요롭게 한다. 작가 버지니어 울프 (Virginia Woolf) 는 "현재는 과거에 의해서 뒷받침될 때 그렇지 못한 현재보다 수천 배 더 의미 있다"라고 쓰고 있다. 시간의 흔적을 머금은 역사적인 도시는 그 속의 삶을 풍성하게 한다. 근대기의 건축물, 오래된 한옥, 옛 다리, 옛날 제방, 고목, 옛 거리 등 오래된 것 들을 품고 있는 공간은 모든 것을 밀어버리고 새롭게 조성한 신도시와는 비교할 수 없는 4차원적인 깊이가 있어 매력적이다.

이렇게 과거가 가지는 다양한 이점을 국가적인 차원에서 적극적으로 보존하고 활용하기 위한 제도가 곧 문화재다. 최종덕 국립문화재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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