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들이하기 좋은 요즘, 차를 몰고 시골길을 지날 때면 동네 여기저기에 방치된 빈집들을 많이 보게 된다. 그럴 때면 저 집에는 누가 살았을까? 어떤 사연들이 있었을까? 하는 생각이 짧은 순간 스쳐 지나가며 가슴 한구석에서 아련함이 느껴진다. 누군가에게는 고향집이었을 그 집은 많은 수가 비어 있다. 하지만 툇마루에 부엌에 굴뚝에 마당에 처마 밑에 묻어있을 한 가족의 삶의 흔적은 그곳을 떠나 있는 가족의 뇌리 속에 영화의 한 장면처럼 생생하게 살아 있기 마련이다.

필자의 고향집도 현재는 빈집으로 남아 있다. 마당에는 풀이 가득 차 들어가지도 못하는 상태이지만 한가운데 서 있던 커다란 감나무의 노랗게 익은 단감의 아삭한 맛, 호기심에 들어가 본 장독대 앞 우물 속의 서늘한 공기와 축축한 돌에 붙은 이끼의 비릿한 냄새, 겨울밤 뒷산 대나무 숲에서 들려오던 스산한 바람소리는 생생하게 필자의 오감을 아직도 자극한다. 나날이 집은 낡아 가지만 고향집을 쉽게 헐지는 못하고 있다. 그 집에 살던 아름다운 추억이 같이 사라져 버릴 것만 같기 때문일 것이다. 아마도 많은 빈집들이 헐리지 않고 살아남아 있는 것은 같은 이유일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이처럼 집이란 한 개인, 가족의 추억의 발생기 이자 저장기이다. 어떤 주변 환경, 어떤 공간구조 및 재료의 집에서 살았느냐에 따라 만들어진 추억은 다를 것이다. 그런 측면에서 천편일률적인 구조와 환경을 가진 현대 도시의 아파트에서 자라난 우리 아이들의 머릿속에는 어떤 기억들이 저장되어 있을지 자못 궁금해진다. 분명 우리 때와는 많이 다를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예전보다 단독주택을 꿈꾸고 실현하는 사람들이 부쩍 늘고 있다는 것이다. 부동산의 가치로만 생각되는 아파트의 한계에서 벗어나 내 가족만의 삶이 좋은 기억으로 저장될 그런 집을 만들고 싶은 이유에서 일 것이다. 다만 우려되는 것은 요즘은 인터넷과 모바일에서 집에 관한 무한한 정보가 공유되고 있기 때문에 단독주택도 아파트처럼 비슷해지고 있다는 것이다.

또한 수십 채를 한꺼번에 짓는 단독 주택 단지 개발도 한창이다. 이런 경우는 단지 전체의 마스터플랜의 통일성과 개별 필지의 독립성을 잘 조화시켜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아파트 단지와는 또 다른 문제점에 봉착하게 될 것이다.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소위 난개발 방식은 개발자가 깊이 고민하지 않은 체 땅을 나누고 마구잡이 토목공사로 단지를 만들어 분양하기 때문에 건축물은 주변과 동화되지 못한 체 덩그러니 놓이게 된다. 그렇지 않고 처음부터 건축사와 함께 건축물과의 관계를 고려한 종합적인 계획이 이루어진다면 보다 좋은 결과를 가져올 수 있을 것이다. 한 가족의 소중한 추억이 담길 마을과 집은 신중히 설계되고 지어져야만 한다. 획일화된 추억을 더 이상 아이들에게 갖게 해서는 안 된다. 우리가 어릴 적 겪었던 마을과 집의 소중한 추억을 물려줘야 한다. 행복한 추억이 쌓여 쉽게 허물지 못하는 그런 집들이 앞으로도 계속 생겼으면 하는 바람이다. 조한묵 대전시건축사회 부회장·건축사사무소 YEHA 대표 건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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