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파주 출판단지와 도라산역, 판문점 자유의 집 일대에서 열린 파주평화발전소 미술제를 관람하기 위해 판문점을 방문할 기회가 있었다. 덕분에 자유의 집을 지나 유엔사가 관리하는 파란색 건물 안에 들어가 군사분계선을 넘어 북녘땅을 밟아보기도 했다. 창밖에는 북한군이 마네킹처럼 서 있었다. 한국에 살면서도 자유롭게 갈 수 없는 금기의 공간이라 관람객들은 사진을 찍으면서도 긴장감을 쉽게 풀지 못했다. 영화 세트장보다 더 비현실적인 분위기였다.

2000년 김대중 대통령과 김정일 위원장이 평양에서 두 손을 맞잡았던 첫 남북정상회담의 장면 역시 그야말로 낯선 광경이었다. 말로만 듣던 분단이라는 현실을, 그리고 북한이라는 실체를 두 눈으로 확인할 수 있는 뜻밖의 상황이었기 때문이다.

이후 남북 관계는 정치적인 문제로 화해 모드와 강경 모드를 넘나들며 분단 체제를 견고하게 유지하고 있다. 외국의 유명 미술관 작품이 순회전을 할 때도 A급 작품은 일본에서는 전시되더라도 국내에는 데려오기 어렵다. 전쟁이 언제 발발할지 모른다는 위험 때문에 작품에 붙는 보험료가 어마어마하기 때문이다. 북한이 미사일 실험을 하면 외국인들도 한국 여행을 꺼린다. 정작 우리의 일상은 평화롭다. 평소 우리는 분단된 현실을 쉽게 망각하기 때문이다.

지극히 사적인 영역에 스며든 분단 트라우마의 폭력성은 놀랍도록 날카롭고 견고하지만, 우리는 그것을 외면한 채 살아가고 있다. 분단된 현실을 망각하고, 이에 무관심해지는 것은 트라우마를 확산시키며 마음의 장벽을 더 높이 쌓을 뿐이다. 우리 안의 트라우마를 정면으로 응시하고 다양한 장벽을 허물기 위해 분단을 새롭게 바라보는 시각이 필요할 것이다.

분단이 이미 진부하고 고리타분한 문제로 치부되면서 이와 관련된 예술가의 다양한 시도는 소중하다. 과거에는 예술가들의 사유도 그리 자유롭지 못해 대부분 통일의 당위성을 주장하는 데 그치기도 했지만 최근 작업들은 분단이 일상의 기저에 끊임없이 작동하는 장면들을 포착하고 우리 안의 편견을 해체한다는 점에서 흥미롭다.

오는 9월에 개막하는 광주비엔날레와 부산비엔날레가 각각 `상상된 경계들`, `비록 떨어져 있어도`라는 주제로 동시에 한국의 분단을 비롯해 전 세계적으로 산재해있는 균열과 대립에 대한 이야기를 대대적으로 다룬다. 국내외 다양한 작가들의 작업을 통해 동시대 인류가 처한 현실을 함께 사유할 수 있는 좋은 기회다. 이슬비 미술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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