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호사칼럼] 그림을 통한 내면의 치유

오래 전 학생 간호사 시절, 아니 다섯 살 꼬마일 때부터 일지도 모르지만 나는 상처치료에 매료돼 외과 간호사의 길을 선택했다. 오랫동안 수많은 상처를 돌보면서 상처 속 검은 죽음의 색을 걷어내고 붉은 희망의 색을 보며 기뻐하며 핑크빛 치유에 감사하곤 했다. 하지만 때로는 치유가 어렵거나 가능성이 희박한 상처를 가진 환자를 만나게 되는데 그분들의 대부분은 암 환자들이었다. 그들은 하나같이 눈에 보이는 상처보다도 더 크고 아픈 내면의 상처를 지니고 있었다. 그들을 돌보며 비록 완벽한 치유는 어렵지만 상처를 깨끗이 세척하고 정성스레 싸매주며 다친 마음을 위로해주기 위해 노력했다. 아픔을 공유하는 것만으로도 그들에게 위로가 된다는 사실에 감사했고 간호사라는 나의 직업을 진정으로 사랑했다.

상처를 돌보는 간호사로 활동했던 나는 이제 직접적인 돌봄 활동을 할 기회가 거의 없지만 또 다른 치유의 방법으로 그림을 그린다. 그림은 감정의 표출이나 인간의 내면세계를 구체화하고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활동으로 여러 가지 선이나 색채로 형상을 표현하고 감상하는 활동을 통해 인간의 폭 넓은 감정을 체험하는 예술이라고 생각한다. 따사로운 햇볕아래 피어나는 연둣빛 봄의 색깔, 초록의 여름, 무지갯빛 가을, 순백의 겨울 등 사계절마다 아름다운 우리 강산의 숲과 물, 하늘 빛, 그 아래 피어나는 예쁜 색깔의 아름다운 꽃 등 우린 일상에서 발견되는 아름다운 색채에 감동하고 치유 받으며 새로운 에너지를 충전한다. 사물은 눈으로 볼 때가 가장 아름답지만 그 순간순간의 느낌과 감격을 오래 기억에 담아두기에는 한계가 있다. 그림의 힘은 아름다운 기억을 오랫동안 보존할 뿐 아니라 나를 깨우고, 진정시키고 치유하며 지금까지의 삶에 감사하게 하고 또 다른 새로운 꿈을 꾸게 한다는 것이다.

세 번의 개인전과 몇 차례의 아트페어에 참여하며 작품 활동을 하는 동안 나의 그림을 통해 치유의 시간이 됐다는 몇 몇 분들의 격려에 힘입어 또 다시 그림을 그린다. 그림을 그리는 시간, 아픈 기억들을 지우고, 내가 인지하지 못한 나로 인해 아파하고 있을 누군가에 대한 용서를 구하며 내려놓음의 시간이 된다. 그림을 통한 또 다른 치유의 방법으로 나의 치유의 숲과 정원에서 누군가가 쉼을 얻고, 치유되어 새로운 에너지를 얻을 수 있길 희망하며 오늘도 캔버스 앞에 앉아본다. 이혜옥 건양대병원 간호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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