춘추시대 권력 주변의 풍경이 오늘날과 달랐던 것은 아니었다. 요 임금이 허유에게 나라를 양도하려 하자, 허유는 그 말을 들은 귀가 더럽혀졌다며 강물에 귀를 씻고 산 속에 숨어버렸고, 백이와 숙제는 형제애로 임금 자리를 서로 양보하다가 의롭지 못한 세태를 한탄하며 수양산에서 삶을 마감하면서 권력에서 멀어져 갔다. 그러나 진정한 고수는 재야에 있어, 때로는 조정의 고관들이 그런 고수를 만나 천하의 정세를 논의하는 사례도 드물지 않았다. 초나라 중대부인 송충과 박사 가의가 그 예다. 두 사람은 담론을 벌이다가 `주역`에 정통해야 조정의 일을 잘 다스릴 수 있다는 데에 의견일치를 보아, 수소문을 한 끝에 당시 이 방면에 대가인 사마계주란 자를 만나러 갔다.

사마계주 역시 초나라 대부 출신이었는데, 찾아가 보니 겨우 서너 명의 제자들을 두고 시장 한 구석에서 한가롭게 점치는 일을 하는 것이 아닌가. 그러나 그의 의관은 정제되어 있었고, 천지와 일월성신의 운행과 길흉의 징험 등에 대해 유창하게 설명을 이어나갔다. 송충과 가의는 옷깃을 여민 뒤 공손히 말했다."선생의 모습을 뵙고 말씀을 들어보니, 저희가 가만히 세상을 바라보건대 일찍이 뵌 적이 없는 분입니다. 그런데 어떻게 이런 낮은 곳에 살면서 천한 일을 하십니까." (`사기` 중 `일자열전`) 이런 일 보다는 조정에 다시 돌아와 큰일을 한 번 해 보는 것이 어떻겠느냐 하는 말을 꺼내기 위한 포석이었으나, 사마계주는 무슨 근거로 그런 말을 하느냐고 따졌다.

두 사람은 점쟁이는 말이 많고 과장되게 꾸며 사람들의 감정에 맞추고, 공연히 남의 운명을 높여 말하여 사람의 마음을 기쁘게 하거나, 어려운 일이 닥칠 것이라고 떠벌려 사람의 마음을 상하게 하며, 귀신을 빙자해 남의 재산을 빼앗고, 많은 사례금을 요구해 자신을 살찌우니 낮고 천하다는 일반론을 이야기 했다. 그러나 사마계주는 단호한 어조로 지금 당신들이 말하는 조정의 인사들이야말로 진정 스스로 부끄럽게 여기고 자중해야 할 자들이라는 논지로 말하면서 몸을 낮추고 겸손하게 말하는 듯 하지만 결국은 스스로 도당을 만들어 다른 사람들을 배척하고 봉록을 받으면서 사익이나 꾀하며 심지어 범법을 하면서 백성들을 착취하며 있지도 않은 문서를 만들어 군주를 속이는 일도 마다하지 않으면서 끊임없이 권력이나 쫒는 자들이라고 질타했다.

살을 파고드는 서슬 퍼런 말에 두 사람은 얼굴이 질렸다. 당당한 사마계주의 모습이 자신처럼 숨어 사는 자들이 비열하고 기회주의적으로 권력을 탐하는 자신들보다 진정한 권력을 가진 듯해 보였다. 두 사람은 옷깃을 여미고 작별인사를 하고 수레를 타고 조정으로 들어왔다. 사흘 뒤 송충은 가의와 마주치자, 가의에게 의미심장한 말을 던졌다. "도란 높을수록 더욱 편하지만, 권세는 높을수록 더욱 위태롭다(道高益安, 勢高益危). 혁혁한 권세를 가진 자리에 있으면 몸을 망치는 날이 오게 마련이다. 점을 쳐서 정확하지 않은 일이 있어도 복채를 빼앗기는 일은 없지만, 임금을 위해 꾀한 일이 맞아떨어지지 않으면 몸 둘 곳이 없다. 서로간의 거리는 멀어 머리에 쓰는 관과 발에 신는 신의 차이 만큼이다. " (`사기` 중 `일자열전`)

그런데 두 사람은 권력의 그늘에 계속 머물렀다. 아니나 다를까. 송충은 흉노에 사신으로 갔다가 죄를 짓게 되었고, 가의도 회왕의 사부가 되었다가 왕이 말에서 떨어져 죽게 되자 자신도 상심하여 굶어죽는 비운의 인물들이 되고 말았다.

권력을 가까이하면 위태롭고 자칫 자충수가 될지도 모르는 사실을 뻔히 알면서도 그것을 차지해 누리려 몸부림친다. 권력의 성취와 마음의 평화는 반비례 곡선을 그린다고 하는데도 말이다. 권불십년이라는 말은 권력자가 최고의 리더십을 발휘할 수 있는 기간이 고작 10년이라는 걸 말해주는 말이다. 그러나 4차 산업혁명의 시대요, SNS 등 즉각적인 소통 수단이 발달해 있는 권력의 지속기간은 더욱 단축된 이유가 되고, 그만큼 과거의 권력을 지키기도 어렵다.

천 개의 얼굴을 달고 있다는 것이 권력이다. 타인에게 때론 무자비하면서 비굴하고 철저히 이기적인데도 이타적인 척 해야 하고, 속으로는 배타적이면서도 끌어안는 모습도 보여주어야 한다. 그런데 권력에는 안주할 공간도 없기에 권력을 유지할 수 있는 길만 보면 유목민처럼 떠도는 것이 아니겠는가. 권력에 몸이 달아 서성이는 사람들의 한결같은 공통점은 끼리끼리 모여 대체로 사익을 추구하면서 자신들만의 짜릿한 권력을 누리려 그 뒤가 뻔한 불구덩에 빠져 든다. 모든 권력은 국민에게서 나온다는 말을 되새겨야 할 선거가 딱 50일 남았다. 김원중 단국대 한문교육과 교수·중문학

<저작권자ⓒ대전일보사. 무단전재-재배포 금지>

저작권자 © 대전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