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문이 불여일견이라고, 백 번 듣는 것보다 한 번 보는 것이 더 낫다는 옛 말이 있다. 그런데 이 말을 들으면 화가 윌리엄 터너가 떠오르면서 동시에 백 번 보는 것보다 한번이라도 직접 경험 하는 것이 가장 정확하다는 말이 생각난다. 이발사의 아들로 4월에 태어난 터너는 미천한 신분을 딛고 영국의 국민 작가라고 불릴 만큼 이미 20대에 명성을 얻은 위대한 풍경화가였다. 그의 풍경화는 당시 유행했던 것처럼 단순히 자연의 아름다움을 그린 것이 아니라 자신만의 시각으로 관찰한 대상을 그림에 담았다. 늘 영감을 떠올리기 위한 시각적 소재를 찾아 해마다 여행을 떠났고 다니는 여러 곳들의 추억을 스케치 해 자료를 수집 한 후, 겨울에 그 스케치를 바탕으로 작품을 완성했다. 터너는 단순히 한 번 포착한 장면을 기억 속에 담아 그린 것이 아니고 대기의 변화나 계절과 날씨에 따라 변하는 빛, 그리고 풍경을 바라보는 사람의 관점 등에 따라 다르게 느껴질 수 있는 변화하는 자연의 모습을 본인이 직접 보고 경험한대로 그린 화가로 이러한 그의 화법은 인상파 화가들에게 큰 영향을 끼쳤다.

그의 작품 가운데 가장 논란을 일으킨 것이 `눈보라 - 항구 어귀에서 멀어진 증기선`이다. 작품에서 보여지는 눈보라와 파도의 소용돌이 속에 휩싸인 증기선을 드라마틱하게 그리기 위해 터너 자신이 폭풍이 부는 동안, 돛대에 묶여 폭풍우를 관찰하다가 구사일생으로 살아 돌아왔다는 웃지 못할 일화가 담긴 작품이다. 그냥 멀리서 바라본 폭풍우와 눈보라가 아닌, 직접 보고 경험한 것들을 작품에 담기 위해 배에 올라 거친 바다 위에 휘몰아치는 비바람과 폭풍을 온 몸으로 직접 느낀 작가의 생생한 경험을 우리도 작품을 보며 느낄 수 있다. 당시 이 그림은 기존의 화풍과 너무나 다른 파격적인 것이어서 그림을 이해하지 못한 사람들의 조롱을 받기도 했다. 거친 자연의 폭력적일 만큼의 위력을 리얼하게 표현하다 보니 그림에 증기선이 어디 있는지, 또 항구의 시작과 끝이 어디인지 알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후 존 러스킨에 의해 재평가되면서 터너의 `눈보라`는 그 어떠한 풍경화보다도 바다의 움직임, 안개, 빛이 가장 장엄하게 표현되었다고 알려지고 있다.

언젠가 뉴스에서 지구가 평평하다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 스스로 만든 로켓에 몸을 실고 1875 피트 우주 상공을 향해 날아올랐던 Mad Mike라는 괴짜 같은 존재에 대해 읽으면서 19세기의 터너가 당시 이런 기발한 존재였을 수도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터너가 목숨을 담보로 했던 그림은 그의 직접적인 경험을 바탕으로 한 결과물인 반면에 베토벤의 `전원 교향곡` 중 푹풍과 천둥소리의 묘사는 비록 작곡가의 귀가 멀어 더 이상 들을 수는 없는 소리지만 마치 터너와 같은 배에 올라 경험을 한 듯 생동감이 넘친다. 이는 후대 작곡가인 롯시니의 윌리엄 텔 서곡에 나오는 폭풍 소리의 원조가 되었고, 이들처럼 거친 폭풍과 무서운 폭풍이 지난 후의 따스한 태양, 그리고 평화로운 뻐꾸기 소리를 한폭의 그림처럼 소리에 담아 낼 수 있었던 천재 작곡가들이 있었기에 오늘날 어린아이들이 즐겨보는 만화의 장면들은 터너의 그림에 담긴 자연의 모습과 베토벤과 같은 작곡가의 자연의 소리가 더해져 한 층 더 강렬한 상상력을 제공 할 수 있다고 확신한다. 조윤수 피아니스트

(참고자료: Walter Lantz Cartoon - Wally Walrus directs "The Storm" from William Tell Overtu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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