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국민은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를 가지며, 행복을 추구할 권리를 가진다. 국가는 개인이 가지는 불가침의 기본적 인권을 확인하고 이를 보장할 의무를 진다.` 대한민국 헌법 제10조는 국민의 인권보장을 위한 국가의 책임을 명시하고 있다. 모든 국민이 어떠한 경우라도 차별로부터 보호받고, 소외를 당해서는 안 된다는 사회의 보편적 가치를 담고 있다.

인권선언 이행과 인권협의체 설치·운영 등 도민의 인권보호와 증진에 관한 사항을 내용으로 한 충남인권조례가 전국에서 처음으로 폐지됐다.

자유한국당 소속 의원들을 중심으로 한 충남도의회는 지난 3일 `충남도민은 성별, 나이, 인종, 성적지향, 성별정체성 등 어떤 이유로도 차별받지 않을 권리가 있다`고 명시된 충남도민인권선언 내용 중 `성적지향과 성별정체성`이라는 표현이 동성애를 조장하고, 도민 간 갈등을 유발한다며 인권조례 폐지안을 재의결했다. 앞서 충남도는 인권보장의 의무와 위헌·위법성, 자치단체장의 조직편성권, 공익 침해 등을 이유로 도의회의 폐지 결정에 재의를 요구했다.

충남인권조례는 2012년 자유선진당 소속이던 송덕빈 의원과 새누리당(현 한국당) 의원들이 주도적으로 발의해 제정됐다. 양 당은 그 해 총선을 기점으로 통합했다. 이어 2013년 조례 일부가 개정되고 이듬해 `충남도민인권선언`이 선포됐다. 아이러니하게도 당시(9대 도의회) 행정자치위원장으로 충남인권조례 제정에 큰 역할을 했던 유익환 의원이 이번에는 10대 도의회 후반기 의장으로서 인권조례 폐지조례안 재의결 현장에서 의사봉을 잡았다. 일부에서 자유한국당 의원들을 향해 자가당착과 이율배반 행위라고 비난하는 이유가 설득력 있게 들리는 대목이다.

충남도도 쉽게 물러서지 않을 태세다. 도는 도의회의 폐지조례안 재의결에 대한 무효확인소송을 대법원에 제기했다. 또 무효확인소송 판결까지 폐지조례가 효력을 발생하지 않도록 해달라는 집행정지결정 신청도 함께 내기로 했다. 이에 대해 충남도의회 의원들은 도의회를 철저히 무시하는 처사이자 도전이라며 도가 소송을 취소하지 않을 경우 의사일정 보이콧 등을 예고하며 맞불을 놓았다.

이렇듯 양 기관이 `치킨게임`을 하듯 평행선을 달리는 사이 국가인권위원회는 한술 더 떴다. 인권위는 지방의회의 인권조례 폐지 움직임 확산을 막는다며 국제공조를 요청했다. 충남도의회의 인권조례 폐지를 인권보장 체계를 무너뜨리는 심각한 사안이라고 보고 유엔 성 소수자 특별보고관에게 한국 방문을 요청하는 서한을 보낸 것이다. 국제 망신까지 자초했다.

자유한국당 충남도의원들이 인권조례 폐지를 강행한 것을 두고 일부에서는 최근 성폭력 사건으로 물러난 안희정 전 지사의 흔적지우기와 50여 일 앞으로 다가온 6.13 지방선거에서 그동안 인권조례 폐지를 주장해 온 개신교계를 의식, 표를 겨냥한 것 아니냐는 추측을 하고 있다. 도지사 취임 후 줄곧 인권도정을 외치며 역점시책으로 추진해 온 안 전 지사가 오히려 성폭력 가해자가 되면서 더 이상 추진 동력을 잃었고, 그 진정성에 의문을 제기하는 빌미를 제공한 건 어느 정도 이해가 간다. 하지만 입지가 좁아진 `기울어진 운동장`에서의 선거를 의식한 것이라면 명분이 너무 약하다. 도정공백과 행정력 낭비를 우려하는 목소리도 간과해선 안 된다.

인권은 인간으로서 마땅히 누려야 할 권리다. 도지사 개인의 소유물도 아니고, 정략(政略)의 대상도 아니다. 충남도민인권선언 내용 중 일부 표현에 오해의 소지가 있다면 정당한 절차를 거쳐 개정하면 될 일이다. 인권조례 자체를 부정해서는 안 된다. 스스로 도민의 대변자라 칭하는 사람들이 과연 진정한 도민의 뜻을 알기나 하는 지 궁금하다. 송원섭 충남취재본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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