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십불종수(六十不種樹)라는 중국 고사가 있다. "나이 60이 넘으면 나무를 심지 않는다"는 뜻이다. 나무를 심어 열매를 수확하기까지는 여러 해를 기다려야 하고 재목을 얻으려 해도 마찬가지로 긴 시간을 필요로 하는데 기대수명이 짧았던 시대에 환갑이 지난 노인이 나무를 심어봐야 살아생전에 과실이나 목재를 얻기는 어려웠기 때문이다. 십년지계 막여수목(十年之計 莫如樹木)이란 말도 있다. "10년 계획으로는 나무를 심는 것이 최선"이라는 말이니 그만큼 나무를 심는다는 것은 지금 당장의 혜택을 바라기보다는 먼 훗날을 기약하는 행동인 것이다.

내 직장생활의 대부분은 신도시를 조성하고 집을 짓는 과정이었다. 간혹 30년전, 20년전에 근무했던 현장을 다시 찾을 때가 있는데 당시에 심었던 나무들이 아름드리 성목으로 자라서 메마른 도시에서 청량제 같은 역할을 해주고 있으면 뿌듯한 보람을 느끼게 된다. 물론 반대의 경우도 있다. 비용이나 시간 등의 이유로 식재가 잘못 됐거나 나중에 부실한 관리로 나무가 제대로 자라지 않은 모습을 보면 여간 속상한 게 아니다. 얼마나 살기 좋은 도시인지 평가하는 여러 가지 기준이 있다. 도로, 전기, 상하수도 등등 점수를 매길 수 있는 항목이 많지만 필요한 장소에 충분한 나무가 식재되어 있고 또 잘 자라고 있는가 하는 점도 대단히 중요한 부분이다.

건축이나 토목기술은 비약적으로 발전해서 공기단축을 이루고 있지만 예나 지금이나 나무를 심고 가꾸는 일은 십년지계(十年之計)에서 변하지 않고 있다. 식재가 잘못됐어도 2, 3년 뒤에나 알게 되고 다시 심어도 또 수년이 지나야 뿌리를 내리게 되니 처음부터 정성을 다해 심고 가꾸는 노력이 필요하다.

대전시 전역의 가로수는 대략 14만 그루라고 한다. 숱한 수종 가운데 아무 나무나 가로수가 되는 것은 아니다. 일단 풍토에 맞아야 하고 대기오염과 병충해에 강해야 한다. 곧게 자라며 모양을 다듬기도 쉬워야 하는데 가지가 굽으며 자라는 소나무 가로수가 거의 없는 이유다. 꽃가루나 냄새나는 열매도 제외 대상이어서 버드나무와 은행나무가 가로수에서 밀려나고 있다. 마지막으로 잎이 넓어서 그늘을 충분히 만들고 낙엽청소도 쉬워야 한다. 이렇게 까다롭게 선정된 것이 우리 주변의 가로수인데 한그루가 시민 4명이 마실 산소를 공급해주고 있다.

식목일이 2주전에 지나갔다. 과거처럼 학교나 기관별로 대대적인 식수행사를 벌이는 것도 아니고 아파트 거주자가 많으니 안마당에 나무 심을 일도 없다. 그래서 인지 식목일이 별로 주목도 받지 못했다. 골목마다 동네마다 감나무집, 대추나무집이 번지수를 대신했었는데 그 정겨웠던 이름을 이제는 식당의 간판에서나 찾을 수 있게 됐고 탱자나무로 울타리를 쳤던 자리는 시멘트 담벼락이 차지하고 있다.

온나라가 미세먼지로 시끄럽다. 도시공사가 운영하는 오월드는 날씨의 영향을 많이 받는데 아침방송에 마스크로 얼굴을 가린 사람들이 화면에 잡히고 진행자의 우려섞인 멘트가 나오면 그날의 입장객수는 평균치를 밑돌게 된다. 마스크가 최선의 대응이 아니다. 나무를 많이 심어 미세먼지를 흡수하는 천연필터로 활용하는 게 효과적이라는 보도를 본 적이 있다. 사람들에게 목재와 열매라는 실물적 이익을 선물하고 평화와 안정이라는 정신적 위안을 주는 것만도 감사한데 이제는 미세먼지 해결방안까지 제시해주니 `아낌없이 주는 나무`란 말의 뜻이 새삼 느껴진다.

육십불종수(六十不種樹)란 속담은 평균수명이 길어지면서 "여든이 넘어도 얼마든지 남무를 심을 수 있다"는 팔십능종수(八十能種樹)로 바뀌었다고 한다. 봄이 다 가기 전에 이번 주말에는 한그루 나만의 나무를 심어보면 어떨까. 10년 뒤에 느낄 기쁨을 생각하며... 유영균 대전도시공사 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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