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에는 10여 개에 달하는 문학 레지던시가 있다. 이는 작가들이 일정기간 생활의 제약에서 벗어나 집중해 글을 쓸 수 있는 작은 공간으로 잠자리, 식사와 더불어 조용한 환경이 제공된다. 이곳에는 아직 작가로 자리 잡기 전에 있는 젊은 작가들이 많고 한걸음 물러선 지긋한 작가들이 또 한 부류이다.

다양한 장르의 작가들이 레지던시를 찾는다. 시인, 소설가, 수필가를 비롯해 희곡, 시나리오작가 등 문자를 매개로 하는 작가들이면 가리지 않고 신청한다. 이 때문에 다양한 장르가 소통할 수 있는 물리적 공간이 된다. 환경도 다양하다. 서울 도심 한복판에서부터, 강원도 산골, 유명 작가의 연고지와 문학관, 남도의 정취를 담은 곳에서 제주도까지.

남도의 산중에 위치한 한곳을 예로 들어본다, 이곳을 지나는 도로는 한낮에도 3-4분에 차 한 대 지나는 한적한 곳이다. 그런데 지난주 이 도로는 인공위성에서도 보일 정도로 환하게 빛났다. 도로 양쪽을 빈틈없이 채운 벚나무들이 한철을 제대로 불태운 것이다. 나직한 건물 하나에 다섯 명의 작가가 자기만의 방을 배정받는다. 그리고 어떤 강제조건도 없다. 자고 싶으면 자고 배고프면 산채로 꾸며진 건강한 찬과 밥을 먹는다. 저녁 무렵이면 궁시렁궁시렁 같이 산책도 한다. 깊은 곳에 각자의 고민이 가득할지언정 분위기는 잔바람에 흔들리는 가지만큼이나 평화롭다.

거실에는 많은 책들이 조용한 아우성이다. 큰 출판사의 신간에서 오래된 철학서, 지역 문학단체에서 옹기종기 모여 만든 문집까지. 문득 시를 쓰면 건강해질까. 뜬금없는 물음이 인다.

`…당신이 나를 두고 겨울을 향해 걸어간 뒤/쓸쓸함이 함박눈처럼 창틀에 쌓여도/내 마음이 이렇게 풍요로운 까닭은/당신의 모습이 내 눈에 남아있기 때문입니다…`

담양에서 한복집을 운영하는 전경희 씨의 `가을을 보내며`라는 시이다. 세련된 수사나 새로운 깨달음을 찾기는 어렵고, 유명한 시의 어투가 보이기도 하지만, 시 한편을 쓰기 위해 변해가는 계절을 바라보고 또 바라봤을 한 사람의 뭉글한 시선이 느껴진다.

시를 즐기는 방법은 여러 가지이다. 좋은 시를 찾아 읽으며 공감하는 일이 그중 하나요, 직접 쓰면서 세상과 깊은 시선을 나눠보는 일도 중요한 방법이다. 이때 세간의 평가는 그저 세간의 것이다. 따라서 시를 쓰면 내 마음뿐 아니라 세상이 건강해진다는 억지를 부려본다. 김병호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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