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파리에 고흐의 그림을 보러 왔다. 왠 호사인가 하겠지만, 중간고사 기간을 이용해 어렵게 시간과 경비를 내 올 수 있었다. 묵고 있는 곳이 흔한 호텔이 아니라 파리 중심가에 있지만 학교의 출장비, 연구비와 전혀 관계없이 온 현장 확인 여행이어서 웬지 민간이 단기간 대여해 주는 저렴한 옥탑 방인 것이 조금도 불편하지 않다. 현관에서 올라가는 계단이 62개인데 한 계단마다 오늘 공부한 그림들을 생각하며 올라가면 나름대로 의미가 있어 매일 선물을 받는 느낌인 것 또한 덤이다.

빈센트 반 고흐가 그린 많은 자화상 중에 오르세 미술관 2층에 있는 비교적 큰 초상화(65x54.5 ㎝)는 일종의 푸른 연두 색을 주로 사용한 그림인데 뒤 배경이 고흐 특유의 물결 모양으로 표현돼 어떻게 보면 부드러운 아지랑이 속에 그의 영혼이 편안하게 보이는 것도 같고, 약간 비스듬히 앉은 자세에서 응시하고 있는 눈빛을 보면 곧 세상을 하직하고자 하는 의지가 보이는 것도 같아 그림 전체에 긴장감을 주고 있다. 고흐 특유의 힘찬 붓 터치가 가까이서는 보이지만 멀리서 보면 다른 자화상과는 달리 더 이상 분노하거나 세상에 대한 원망은 멀리 놓아 버린 것이 틀림 없다는 확신이 든다. 또한 좌우에서 보는 이 자화상은 빛의 방향의 변화와 함께 고흐가 이 두 방향에서 표현하고자 한 것이 다름을 알 수 있고 아래에서 쳐다본 느낌 또한 다른 것에 이 자화상을 통해 전달하고자 한 메시지가 가히 통합적이면서도 각 방향의 이미지가 독립적이라는 경이로움을 느낄 수 있다. 항상 그렇지만 현장 확인은 이래서 정말 진실하고 그래서 많은 깨달음을 준다.

사실 `피카소 공과대학`이라는 좀 색다른 책을 준비하면서 많은 한계를 느낀 것이 이 여행을 만들었다. 책의 목적은 그림을 통해 공학적 생각 즉 창조적 생각을 배울 수 있다는 주장을 여러 가지 예를 들어 설명하고 설득하고 그래서 공과대학 학생들이 좀 더 신나게 공부할 수 있게 하는 것이다. 그런데 실제로 본 그림을 이용해 설명하는 것과 그렇지 않은 경우 그 차이가 너무나 크다. 결국 쓰기를 멈추고 현장에서 직접 눈으로 확인하는 공부를 해야겠다 마음 먹고 처음 방문한 곳이 오르세 미술관이다. 마네와 모네, 르누아르, 바지유, 세잔 등 거장들의 작품들이 즐비한 공간이다. 그 중에서도 귀한 고흐의 마지막 초상화를 자세히 볼 수 있는 기적의 시간을 가졌다.

이응노 미술관은 가까운 곳에 있어 언제나 찾아 갈 수 있어 소위 그의 세계를 책에 포함시킬 수 있었던 것은 큰 행운이다. 이 곳에 11시간 동안 비행기를 타고 날아와서 불편한 숙소를 감내하고 또 지도를 꺼내 들고 찾아가서 이리 저리 그림을 보고 나서야 그 사실을 알았으니 많이 부끄럽기도 하다.

현장 확인의 소중함은 우리 사회에서 잊혀져 가는 것 같아 안타깝다. 신문 방송의 현장 확인이 경시되기 시작한지 오래되고 정치 사회 전반에 걸쳐 아니면 말고 식의 인용이 너무도 많다. 인터넷의 영향이라고 보기에는 정말 통절히 반성할 일인데 정치권에서 더 앞장을 서니 옥탑 방을 올라가는 62계단이 멀고 힘들기만 하다. 학생들의 보고서에서 현장 확인의 깊숙한 공부가 보이지 않으니 화가 나고, 그래서 우리 공업제품이 날로 깊이와 새로움에서 멀어져 가니 답답하다.

필요하면 파리의 오르세 미술관뿐만 아니라 시골의 미술관도 찾아가야 한다. 그래서 살아 있는 생각을 하는 살아 있는 공부를 해야 한다. 남의 생각을 훔치고 베끼고 그 것을 자신의 것인 듯이 말하고 주장하는 것은 우리가 타고 있는 대한민국 호를 점점 세계의 중심에서 변방으로 밀어나는 무서운 파도, 바람 이다. 김양한 KAIST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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