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층·지역간 격차와 경쟁이 심해지면서 사회부적응 현상이 일어나고 있다. 이른바 도덕적 규범과 질서가 상실된 혼돈상태를 일컫는 `아노미 현상`이 만연하고 있는 것이다. 아노미 현상은 정신건강의 영향이 크다. 현대인에게 정신건강은 삶의 질에 막대한 영향을 주기에 정신적 안정유지가 중요하다. 과거 웰빙에서 힐링으로 관심이 이동하는 이유다. 정신건강과 밀접한 우울증을 앓는 사람은 전 세계 인구의 4%나 된다. 우리나라는 1.5%가 우울증 환자다. 하루 자살하는 사람만도 44명 꼴로 OECD 회원국 중 1위의 불명예를 안고 있다.

이런 때문에 신체적·정신적 치유산업이 덩달아 발달하고 있다. 국내 웰니스(건강+휴식+치유) 시장은 75조 9800억 원 규모로 GDP 7% 수준이다. 이와 관련한 사업체만도 19만 4200곳에 달하고 86만 9000여 명이 종사하고 있다. 국제적으로 유명한 힐링관광산업은 대부분 그 나라 고유의 문화, 특화자원을 기반으로 개발되는 추세다.

우리나라도 이를 기반으로 하는 치유산업이 활발하다. 국내 치유관광은 산림을 중심으로 발전했다. 산림치유는 1990년대부터 법령과 제도가 정비돼 산림복지서비스 수혜자가 5년 전 1221만 명에서 1798만 명으로 늘었다. 치유의 숲은 2009년 처음 조성돼 전국 12곳에서 이용자가 연간 100만 명을 넘어섰다. 장기체류를 위한 세계 최초 국립종합산림치유 전문시설도 들어섰다. 산림청은 오는 2022년까지 치유의 숲 75곳을 조성하고 숲 태교와 치매예방 전문 산림치유지도사도 육성한다.

해양자원을 이용한 해양치유도 연구개발이 한창이다. 충남 태안군 등 전국 4곳을 해양치유산업 협력 지자체로 선정해 해양치유 사업 모델을 발굴 중이다. 올해까지 해양치유서비스 산업 육성을 위한 법을 만들고 내년까지 51억 원을 투입해 해양치유 비즈니스 모델을 개발할 방침이다. 우리의 해양치유는 선진국이 1960년대부터 해양을 치유자원으로 개발하고 관광, 의료, 바이오산업과 연계해 육성하고 있는 것과는 대비되지만 블루오션으로 떠오르는 분야다. 최근엔 우리의 농경문화를 바탕으로 한 치유농업(Agro-healing)이 새로운 치유산업으로 주목받고 있다. 농업이 삶의 근간인 `먹거리`를 생산하는 차원을 넘어 도시민의 삶과 휴식을 책임지는 `치유의 영역`으로 변화하고 있는 것이다. 이는 농업이란 영어(Agriculture) 단어에서도 엿볼 수 있다. culture란 문화와 재배가 함께 포함된 의미로 다른 생명체를 기르고(culture) 돌보는(care) 행위와도 연관돼 있다. 치유농업의 대표적 모델은 학교텃밭, 농업 체험교육, 돌봄농장 등으로 이들 시장규모는 대략 4400억 원 정도로 추정된다. 농업을 통한 치유라고 느끼는 26개 활동을 통해 수요자 조사를 벌인 결과 치유농업 가치가 39조 원까지 성장할 것이란 전망에서 미래 성장산업 가능성도 높다.

치유농업 프로그램 운영 효과도 뛰어나다. 유아·아동을 대상으로 공감, 배려 등 치유 프로그램을 운영했더니 욕설(6%)과 조롱(9%), 희롱이 6% 감소하고, 스트레스 완화 프로그램에 참여한 직장인은 스트레스 반응이 15% 줄어드는 효과가 있었다. 청소년에게는 분노공격성 66%, 불안이 48% 감소하는 효과를 봤다. 생각보다도 농업을 활용한 치유 효과가 뛰어나지만 치유농업을 잘 모르고 있다는 데 문제가 있다. 조사결과 국민의 절반이상이 치유농업에 대해 전혀 모르고, 국민 10명 중 7명은 참여해 본 경험이 없을뿐더러 초등학생들은 도시농업에 대해 25.8%가 전혀 모른다고 했다.

작물을 기르는 과정을 통해 마음을 치유할 수 있다는 효과가 입증되면서 농진청은 농업·농촌의 자원을 활용한 치유농업 기술·개발과 산업화에 매진하는 모습이다. 걸음마 단계인 치유농업을 한단계 끌어 올리기 위해서는 농업의 교육과 치유적 기능, 공익적 가치 등에 대한 개념 정리와 함께 치유농업에 대한 연구·개발이 활발히 이뤄져야 한다. 그래야 우리의 농업이 먹거리를 넘어 새로운 영역의 치유산업으로 발전할 수 있다.

곽상훈 취재1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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