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이다. `봄이 온다`라는 주제로 평양에서 열렸던 우리나라 방북 예술단의 공연처럼 따스한 봄바람은 남에서 북으로 향하고, 하룻밤 사이에 느닷없이 만개한 벚꽃은 이미 꽃잎을 날린다.

미쳐 겨울옷을 개켜 넣지 못해 입고 다니던 두터운 겉옷은 따사로운 봄 햇살에 한 꺼풀씩 그 무거움을 벗어 던지고, 지난겨울의 한파가 유난했기에 잊지 않고 찾아준 봄의 따스함이 더욱 설레고 감사하다.

입춘이 한참이나 지난 2월 말일의 어느 유명 문방구에는 신학기와 입학을 맞이해 새로운 노트와 필기구를 준비하기 위한 학생과 학부모들이 북새통을 이뤘다. 하필 오늘 아무 생각 없이 여기를 찾았을까 하는 후회와 함께 평소 즐겨 쓰는 형광펜을 사기 위해 전시대로 향했다. 전시장에는 색연필, 색 볼펜, 색 잉크, 형광펜 등의 다양한 색들은 마치 봄의 꽃을 펼친 듯 다채로웠다. 수많은 색을 입힌 펜들이 섞여 아무렇게나 꽂혀 있음에도 불구하고 산만하거나 무질서하게 보이지 않았다. 오히려 예쁘고 화사해 시선과 마음을 사로잡았다. 자신들이 원하는 색들의 필기구를 하나둘씩 챙겨 서둘러 밖으로 빠져나가 도시로 향했다. 아직 봄이 찾아오지 않은 도시의 풍경은 여전히 무겁고 차가운 건물로 빼곡히 들어차 답답해 보였다. 잠시 멈춰서 방금 산 노란색, 주황색, 연두색 형광펜으로 줄을 그어 본다. 도시의 운김은 여전하지만 눈이 맑아지고 도시의 문맥이 읽힌다. 상상만으로도 설렌다.

드디어 찾아온 봄햇살의 따스함과 살가운 봄바람은 자연의 품격을 새롭게 하는 위대함으로 우리를 매혹시킨다. 도시의 건물과 거리의 표정 없던 무채색 풍경 사이로 다채로운 색들의 향연이 펼쳐진다. 화려하게 더러는 수줍듯이, 실체는 너무 드러나 튀지 않으며 부끄러워 숨지도 않아 원래 있었던 듯 어우러져 우리의 마음과 삶 속에 스며든다.

으뜸인 벚꽃의 화사함은 꿈에만 그리던 뭍에 처음 오르는 섬처녀의 뽀얀 속살처럼 상기되어 설레고, 겨우내 두꺼운 콘크리트 안에 갇혀있던 도시를 밖으로 치닫게 해 거리를 비우고 광장을 비우게 한다.

꽃이 질 무렵 시나브로 세상에 없던 색이 드러난다. 멋모르는 터벅 머리 숫총각의 순진한 몸짓처럼 아직 색깔 피를 못 잡은 여리디 여린 새순은 도시와 자연을 정화시키는 희망의 시작이다.

그 작은 몸짓은 싱그러운 초록의 물결로 성장해 도시 안에서 거리를 채우고 광장을 채운다. 도시의 문맥이 드러나고 도시의 품격이 새로워진다. 오지 않을 것 만 같았던 상상 속의 실체가 살아 숨 쉰다.

서로의 이해관계와 가치의 차이로 얽혀 있는 도시의 풍경은 겨울만큼이나 차갑고 경직돼 있다. 봄의 위대함으로 서로의 경직된 틀을 한꺼풀씩 벗기며 얽힌 맥락을 풀어나가길 꿈꾼다. 자연과 어우러져 주거의 가치를 바로 세우고 건축문화에 대한 새싹을 틔우며 다채로운 도시의 변화와 성장의 꽃을 피우길 바란다. 상기된 봄 꽃과 여리디 여린 봄 싹으로 품격이 달라지는 우리의 도시를 상상한다. 아직도 꽃샘추위가 여전하지만 설레는 마음으로 봄을 맞는다. 이상우 건축사사무소 에녹 건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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