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석연 교수
조석연 교수
해 더디 지는 봄날 강과 산은 아름다운데,

봄바람은 화초 향기 싣고 솔솔 불어오네.

진흙 눅진해지니 집 지으려는 제비들 날아들고,

모랫벌 따스해지니 원앙이 짝지어 노니는구나.

遲日江山麗 春風花草香 泥融飛燕子 沙暖睡鴛鴦

봄을 소재로 한 두보(杜甫)의 절구두수(絶句二首) 중 제 1수이다. 요즘같이 기분 좋고 여유로운 봄날을 기가 막힐 만큼 멋들어지게 표현해 낸 시가 아닌가 싶다. 봄날의 강과 산, 봄바람, 그리고 제비와 원앙은 봄내음을 가득 품고 있는 봄의 아이콘이다. 특히 제비는 봄에는 빠질 수 있는 상징 같은 조류이다. 봄을 알리고 사람에게는 기쁨을 주는 좋은 운을 가지고 있다는 제비는 그래서인지 우리나라 옛 선인들에게 많은 사랑을 받았다.

조수삼이 조선시대 세시풍속을 기록한 `세시기`에는 "민가에서 오색실을 둥글게 엮어 봉라 모양으로 만들어 문 위에 걸어두고 제비를 맞이하였다"는 기록이 있다. 언제부터였을까. 정성스럽게 귀한 오색실을 한 올씩 엮어 만든 `제비맞이`가 민가의 풍습이 되었고, 건강과 안녕을 비는 정성과 바람이 지금 껏 우리를 잘 버텨오게 한 것은 아닐까 싶다. 그래서인지 제비를 반갑게 맞이하는 풍습은 지금까지도 전해오고 있는 곳이 많다.

전라남도에서는 삼월 삼짇날 즈음 제비집을 손보는데, 제비가 그곳에서 새끼를 낳아 기르면 복을 받는다고 한다. 또 봄에 제비를 처음 보았을 때 제비에게 절을 세 번 올리고 왼손으로 옷고름을 풀었다가 다시 여미면 그 여름에는 더위를 타지 않는다고도 한다. 경상남도 창원에도 삼짇날 물과 밥, 술, 나물, 떡을 정성스럽게 마련하여 한 상 푸짐하게 차려 제비를 맞는 `제비맞이` 행사가 있다. 제비를 신령스러운 동물로 각별하게 여기고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이 지역에서 불리는 `성주풀이` 노래에는 제비가 옥황상제의 비범하고 성스러운 심부름꾼으로 묘사되고 있기도 하다.

우리 민족의 제비 사랑은 어느 한 지역의 이야기가 아니다. 널리 잘 알려져 있는 남도 잡가인 새타령에서도 도입부분에 제일 먼저 등장하는 새가 바로 연자, 즉 제비이다.

`삼월 삼짇날 연자 날아들고 호접은 편편 나무 나무 속잎 가지 꽃 피었다`로 시작하는 새타령은 온갖 새를 주제로 하는 아주 흥겨운 노래이다. 어깨를 들썩이게 만드는 빠른 중중모리 장단에 제비가 날아오는 봄의 경치를 노래하고 있는 새타령의 전반부는 봄을 맞는 우리네의 마음이 어떠했는지를 말해주는 듯하다. 밝고 흥겹고 유쾌한 이 노래의 주인공은 봄이며, 반가운 봄을 알리는 메신저가 바로 제비인 것이다.

그런가 하면 제비는 연모의 대상이 되기도 한다. 봄을 알리는 포근한 이미지의 제비는 사랑에서도 빠질 수가 없다.

`차라리 내가 죽어 삼월동풍 연자(燕子)되어 / 임 계신 처마 끝에 집을 짓고 내가 노니다가/ 밤중만 임을 만나 만단정회(萬端情懷)를 풀어볼거나`

따뜻한 삼월에 좋은 일만 가져다준다는 제비로 태어나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겠다는 이 가사는 춘향가 중 `갈까부다`라는 눈 대목의 한 구절이다. 느리지도 빠르지도 않은 중모리 장단으로 불리는 이 대목은 한양으로 간 이 도령에 대한 그리움을 애절하게 그려내고 있다. 그런가 하면 이것과 정 반대되는 상황의 노래도 있다. 부산 지역에서 논에 모를 심으면서 부르는 모심기 소리에서는 `임이 죽어서 연자가 되어 춘세 끝에 집을 지워 / 날면 보고 들면 봐도 임인 줄은 내 몰랐네`라며 사랑하는 임이 제비로 표현된다. 임이 죽어서 제비가 되어 추녀 끝에다 집을 짓고 매일 드나드는데도 임인 줄을 몰랐다는 내용은 제비가 갖고 있는 고운 이미지를 그대로 보여주고 있다.

며칠 후면 구월 구일에 강남 갔던 제비가 재복(財福)을 갖고 다시 돌아온다는 삼월 삼짇날이다. 길일 중의 길일인 삼짇날. 명창 박동진은 어느 제약회사의 광고에서 목청껏 `제비 몰러 나간다`라고 욕심꾸러기 놀부의 고약함을 외치기도 했지만, 제비는 우리가 기꺼이 맞이하는 새이다. 진달래꽃을 따 화전을 부치고 물오른 버드나무가지를 꺾어 피리를 만들어 불며, 올해는 더욱 행복해질 수 있기를 착한 제비에게 부탁해보면 어떨까? 조석연 대전대학교 H-LAC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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