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 마지막 날, 대전예술의전당에서 `보스 드림즈(Bosch Dreams)`를 봤다. 500년 전 네덜란드 화가 히에로니무스 보스의 작품을 모티브로 애니메이션과 서커스, 연극이 어우러진 아트 서커스 공연이었다.

보스는 중세 말기에서 르네상스 시대까지 활동했다. 남아 있는 그림은 25점 정도에 불과하지만 그의 작품들은 수많은 예술가들에게 영향을 줬다. 특히 살바도르 달리 같은 초현실주의 예술가들이나 대중예술가 더 도어스의 짐 모리슨에게. 프로이트 이후에 보스의 그림들은 인간 충동과 무의식 관점에서 활발히 재해석되기도 했다.

가장 유명한 작품 `쾌락의 정원`은 스페인 왕실 보물이었던 덕에 완벽하게 보존됐다. 지금은 프라도국립미술관의 인기작이다. 심지어 지난 2016년 보스의 고향에서 열린 500주년 기념 회고전에 전시초대를 받고도 작품 보존을 고려해 거절했을 정도다. 정작 보스는 자세한 작품설명을 남기지 않았다고 한다. 심지어 제목조차도 후대에서 붙인 것이다.

이 작품은 중세시대 여느 그림들처럼 성경 내용의 사실적 묘사에 그치는 따분한 작품이 아니다. 들여다볼수록 상상과 실제가 혼재된 묘한 세계에 빠져든다. 상상동물들이 하늘을 날아다니거나 군무를 추고, 물구나무 선 사람들이 도처에 산재돼 있다. 천국의 열쇠는 고문기구로 활용되고, 나체의 남녀는 홍합 속에서 애정행각을 벌이며, 초대형 딸기를 많은 사람들이 둘러싸 나눠먹고 있다. 죽음의 상징인 딸기를 먹는 인간은 필멸의 존재며, 인생은 짧으니 현재를 소중히 여기고 충분히 누리라는 뜻일까.

공연에서는 이 작품 외에도 `은총 받은 이들의 승천`, `바보들의 배`, `건초수레`, `마술사`, `우석의 제거`를 활용한 애니메이션을 상영한다. 또한 이를 무대배경으로 아트 서커스도 펼쳐진다. 몸으로 보스의 그림을 보여주는 셈이다. 각기 다른 시간대에 살던 다양한 인물들이 보스가 작품을 그리는 환상공간에 모이기도 한다. 짐 모리슨은 보스의 작업실에서 영감을 얻어 `바보들의 배`를 작곡하러 나가고, 살바도르 달리는 `위대한 자위행위자`를 그리러 간다. 어느덧 관객은 보스를 집중 연구하는 교수의 강연장에 앉아있게 된다. 한편 교수의 어린 딸은 공연 첫 장면에서 침대 위에 죽어가던 보스로부터 빨간 열매를 받는다. 소녀가 공연 내내 소중히 지킨 이 열매는 공연 마지막 장면 보스가 죽은 후에는 그림 속 연못에 던져진다. 보스의 영혼은 이렇게 작품에 남아 후대로 이어졌다. 천국도 지옥도 아닌, `쾌락의 정원`에.

보스는 "우리는 어디를 향하는가?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라는 철학적 질문과 답을 그림으로 보여줬다. 아마도 당시 최대의 화두였으리라. 중세가 끝나고 르네상스가 시작되던 시대, 즉 모든 질문의 시작이자 정답이었던 신의 지배가 갑자기 사라지고 근대과학과 인본주의가 생겨나던 급변기. 500년이 지난 지금, 우리는 과연 보스의 질문에 명쾌히 답변할 수 있을까?

21세기는 인류의 또다른 급변기다. 중세시대 신의 자리를 인간이 대체해버린 르네상스 이후, 인류는 인간이 만물의 척도이자 모든 것의 해답이라 믿고 살아왔다. 하지만 최근에는 `위대한` 호모 사피엔스 종이 지금처럼 다른 생명체들을 비롯한 지구환경을 지배하는 게 과연 바람직한지를 자문하는 학자가 늘고 있다. 미래학자 레이 커즈와일은 인공지능이 인간지능을 능가하는 특이점을 2045년으로 예측했다. 그렇다면 그 이후는? 인간과 인공지능의 행복한 공존을 꿈꾸는 사람들이 있는 한편 인공지능이 인류 최후의 발명품이 되리라는 의견에도 상당한 무게감이 실린다. 보스의 질문은 아직 유효하다.

공연의 열기가 식지 않은 채 나는 아트홀을 나섰다. 환하게 빛나는 둥근 보름달이 나를 맞았다. 골목길에는 벚꽃이 흐드러지게 피었고, 살랑대는 바람에 실린 벚꽃 향기는 코끝을 스쳤다. 나는 한껏 숨을 들이쉬어 봄을 마셨다. `현재를 즐겨라`, 보스가 내게 말했다. 봄은 길지 않다. 봄밤은 더 짧다. 이승미 한국표준과학연구원 책임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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