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기에 차이가 있을 뿐, 모든 사람은 부모 또는 가족으로부터 독립을 한다. 하지만 그들의 `독립`은 경제적 또는 공간적인 독립에 불과할 것이다. 결국 마음 깊은 곳 믿는 구석이자 진정한 휴식의 장소는 고향, 그리고 가족이다.

영화 `레이디 버드`는 부모의 간섭과 관심에서 벗어나기 위해 고향을 떠나는 사춘기 소녀의 이야기다. 꿈 많은 18살 소녀 크리스틴 `레이디 버드` 맥퍼슨의 꿈은 뉴욕에 있는 대학에 합격해 지긋지긋한 고향 새크라멘토를 벗어나는 것이다. 하지만 그녀가 대학지원을 위해 쓴 자소서를 읽은 교장 수녀님은 새크라멘토에 대한 애정을 잘 묘사했다고 칭찬해준다. 그녀가 세상에서 가장 싫어하는 새크라멘토에게 애정이라니. 애정이 아니라 그저 관심을 기울인 것 뿐이라고 항변하는 그녀를 향해 교장수녀님은 `애정과 관심은 동의어` 라고 말한다.

그녀는 새크라멘토 뿐만 아니라 그녀의 이름마저 부정한다. 부모님이 지어주신 이름 사이에 스스로 정한 `레이디 버드 (Lady Bird)`를 넣어 레이디 버드로 자신을 불러달라고 사람들에게 끊임없이 요구한다.

고향과 가족에 이어 그녀가 부정하는 것은 그녀의 가족, 특히 `엄마`이다. 영화의 이야기가 흘러가는 줄곧 레이디버드는 엄마와 수없이 부딪친다. 그녀가 이름을 바꾸고 본래의 이름을 부정하는 행위는 그 이름을 부여한 주체인 `엄마`에 대한 저항이기도 하다. 자신의 뿌리, 이름, 엄마를 거부해야 자기 자신의 주체는 비로소 자신이 될 수 있다고 믿는 것이다. 레이디버드를 연출한 그레타 거윅 감독은 "안타까울 만큼 서로에게 닿지 못하는 두 여인을 그리다가 마지막 순간에 가서야 그 사랑을 이룰 수 있게 해 주고 싶었다"며 "나에게는 이런 게 가장 감동적인 러브스토리이다. 어머니와 딸 사이의 로맨스가 가장 격정적인 로맨스 중 하나인 것 같다"고 말했다.

하지만 겨울이면 고향을 찾아 날아오는 새들처럼 레이디버드 역시 엄마와 고향은 결코 떠날 수 없는 존재다. 두 모녀의 갈등이 영화를 보는 내내 심각해보이지 않았던 이유다.

결국 레이디버드는 그토록 원하던 뉴욕에서, 그토록 싫어했던 것 들을 받아들일 수 있게 된다. `크리스틴`임을 부정하던 레이디버드는 다시 스스로 `크리스틴`임을 인정한다. 그녀는 새크라멘토를 운전하며 느꼈던 감정을 다시 느끼고 교회를 제 발로 찾아가면서, 엄마에게 `사랑해요(I love you)`라는 메시지를 남긴다. 그리고 자신의 이름을 다른 이에게 `크리스틴`이라 말하게 됐다.

익숙한 것을 떠나 먼 곳으로 가는 것, 그리고 바보처럼 그 곳에서 다시 고향을 그리워하는 것, 그곳의 가치를 깨닫는 것은 마치 여행과 같다. `크리스틴`은 잠시 `레이디버드`로 여행을 떠나 `크리스틴`의 가치를 회복했다. 그토록 원하던 곳 뉴욕에서 그녀는 진정한 자신은 결국 새크라멘토에 있다는 것을 알게 된 것이다.

특히 "어떻게 부모에게 받은 이름을 부르면서 신을 믿지 않을 수 있지"라고 말하는 장면은 그녀가 본래의 이름이 가진 무게와 깊이를 온전히 알게 됐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토록 미워하고 벗어나고 싶었지만 결국 사랑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서지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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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지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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