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엽전`(葉錢)은 둥근 형태에 가운데에는 네모난 구멍이 있고, 철(鐵)이나 동(銅)으로 만든 고려와 조선시대 주화를 말한다. 우리나라 최초의 철전(鐵錢)은 고려 성종 시대에 만들어진 `건원중보(乾元重寶)`다. 중국의 `건원중보`를 모방해 만든 고려의 `건원중보`는 중국의 엽전과 구별이 어려워 이후 상·하부에 `동국`자를 앞면에 새겨 넣어 `동국중보`(東國重寶)를 새로 만들었는데 이것이 우리나라 이름을 새긴 최초의 주화다. 고려 숙종 7년에는 `해동통보`(海東通寶) 1500관(1500만개)을 만들어 문무 관리들에게 나누어 주었는데 이로써 우리나라도 화폐경제의 시대에 들어서게 됐다.

조선시대에 와서는 대표적인 주화로 일컬을 수 있는 `상평통보`(常平通寶)가 제조됐다. 인조 11년에 상평청(常平聽)을 설치해 주조(鑄造)와 유통을 시도했지만 사람들은 여전히 곡식이나 옷감 등을 교환에 활용했기에 널리 사용되지는 못했다. 그러다가 1678년(숙종 4년)에 관료들의 주장에 따라 상평통보를 다시 주조하기 시작했는데 점차 상업이 발달하면서 주화의 유통이 활발해져 근대 화폐가 나오기 전까지 널리 사용됐다. 하지만 상평통보를 유통시키는 데에는 어려움도 있었는데, 돈보다 구리 값이 높아지자 구리가 주성분인 상평통보를 녹여 파는 사람이 생겨나 유통과 경제 활동에 큰 지장을 초래하기도 했다. 10원 짜리 동전을 녹여 구리로 팔았다는 뉴스가 나온 현재의 상황과도 매우 흡사했던 것.

숙종이 상평통보를 제조하면서 창의적으로 만든 주화가 `별전`(別錢)이다. `이전`(耳錢)이라고도 불리는 별전은 원래 상평통보를 만들 때 무게나 순도 등을 확인하기 위해 시험품 형식으로 만들던 주화였으나, 장식과 상징적인 의미를 더해 왕실이나 사대부들이 소장하는 애장품이 됐다. 여기에는 길상(吉祥)을 의미하는 동물 문양과 액운을 물리치는 벽사의 의미를 담는 경우가 많았다. 출세를 상징하는 용(龍)과 다산을 상징하는 포도, 장수의 상징인 십장생(十長生) 등에 한자의 조형미와 의미를 결합했다. 조선 후기로 오면서 민간에도 널리 사용됐고 상류 사회의 혼수품이 되기도 했으며, 노리개나 열쇠 등을 달아 행운을 기원하기도 했다. 비단 헝겊 끈을 늘어뜨려 장식하거나 칠보와 같은 특이한 기법의 별전도 등장하게 됐다. 한국조폐공사가 주화(동전) 제조기술 등을 고품위 메달 제품에 새롭게 접목시키거나, 행운을 기원하는 골드바 제품을 출시하는 것과 흡사하다고 생각하니 재미있다.

엽전이나 별전에는 둥근 모양에 모난 구멍이 뚫려 있다. 둥근 것은 하늘, 모난 속은 땅을 상징한다고 하나, 실로 꿰어 다니기 위해 구멍을 뚫었을 것이라는 것이 정설이다. 혹은 당시에도 원가절감의 개념이 도입돼 중량을 줄여 제조비용을 아끼기 위해 구멍을 냈을지도 모를 일이다.

이런 고주화(古鑄貨)는 접하기도 어렵고 수집에 상당한 비용을 지불해야 하지만 쉬운 방법도 있다. 조폐공사에서 문화제품 복원사업의 일환으로 별전을 재현하고 있기 때문이다. 별전들을 하나씩 수집하다 보면 독자들에게도 복록과 행운이 쌓여가지 않을까? 예술성 있는 별전을 감상하는 즐거움도 더불어 누릴 수 있다. 이봉상 한국조폐공사 압인사업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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