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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온사인 꺼진 밤… 남루한 이불 덮고 여전히 꿈을 꾸네

2018-04-03기사 편집 2018-04-03 17:55: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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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산 싸전·장미마을

첨부사진1아산시 온천동 싸전거리 내 한 골목길 모습. 사진=황진현 기자
온천으로 유명한 아산은 1960-70년대만 해도 전국에서 몰려드는 신혼여행객들로 붐볐다. 아산에는 아산, 온양, 도고 등 3대 온천이 모여 있어 중심상가를 시작으로 수많은 관광호텔들이 생겨났다. 당시만 해도 아산과 겨룰 수 있는 관광명소가 흔치 않았다. 결혼 시즌이 되면 전국의 신혼부부가 온양으로 몰려왔을 정도라고 한다. 특히 조선시대의 수많은 왕들이 온궁을 짓고 휴양을 목적으로 머물렀다고 한다. 아산의 역사는 온천수와 함께 흘러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듯 싶다.

그러나 지역 관광산업이 쇠퇴하면서 관광객들의 발길은 줄고 온양온천 주변은 침체됐다. 지역경제도 바닥을 쳤다. 한국전쟁 이후 아산 온천동 주변으로는 싸전(쌀 같은 곡식을 파는 가게)이 발달했다. 시장이 발달하면서 자연스럽게 유동인구가 증가했고 현금도 잘 돌았다. 싸전거리는 쌀 파는 곳이 많이 있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옛 싸전은 현재의 온천 1동 주민자치센터 자리 일대에 있었다. 이 곳에서 평생을 살았다는 한 할머니는 "당시 5일장이 되면 이 곳은 발 디딜 틈 없이 수 많은 장사꾼들과 행인으로 북새통을 이뤘다"면서 "하지만 지금은 낡은 모습만 남은 채 이곳을 지키고 있다"며 옛 기억을 떠올렸다.

오래된 건물들을 보면 당시의 모습을 상상할 수 있을 정도다. 이 곳을 둘러보면 다닥다닥 붙어있는 판자촌을 떠오르게 한다. 슬레이트 지붕 아래 시멘트 벽돌과 좁은 골목길이 그대로 노출돼 있다. 집과 집 사이에 난 골목길은 사람 한 명이 지나다닐 정도로 비좁다. 길 한쪽에는 예전 번성했던 시절과는 달리 몇 몇 가게들만이 간판을 내걸어 놓고 영업을 이어가고 있을 뿐이었다. 이 곳은 토지 소유권 분쟁도 있었던 곳이기도 하다. 토지 소유권 문제로 아산시와 시장확장추진위원회간 법정다툼으로 1990년 대법원까지 소송을 진행했던 곳이다. 수십 여년간 개발 필요성은 있었으나 구체적인 개발이 이루어지지 않아 온양중심상권내 위치하면서도 도시경관 저해와 주거환경이 상당히 열악하다. 현재 이 지역은 변화를 꾀하고 있다. 아산시는 싸전지역의 열악한 주거환경 개선을 위해 도시개발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사전 협의보상을 마친 건물에 대해 본격적인 철거공사를 하고 있다. 싸전부지에 200세대 규모의 행복주택도 들어선다. 아산시는 지난해 싸전지역의 열악한 주거 환경을 개선하고 청년 세대의 주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한국토지주택공사와 업무협약을 체결했다. 공영개발 방식의 도시개발사업을 통해 시가 제공한 시유지(2427㎡)에 LH가 183억 원을 들여 200가구의 주거공간과 복합 커뮤니티 시설 등을 건설한다. 허름하고 낡은 공간이 이제는 새로운 공간으로의 변화를 준비하고 있다.

바로 옆에는 '장미마을'이 있다. 발길을 돌려 찾은 이 곳에는 주민 한두 명이 가끔 허름한 길을 오갈 뿐이었다. 골목길 안으로 들어가면 '앨리스', '나사', '우주', '황진이', '이벤트' 등의 간판을 내단 집들이 늘어서 있다. 간판 이름이 고급스럽기 보다는 촌스럽다는 표현이 더 잘 어울릴 듯 하다. 골목길 폭은 3-5m 정도에 불과했고 도로는 여기저기 깨져 있었다. 간판은 알록달록해 장미마을이라는 이미지를 연상케 했지만 어쩐지 삶의 남루함과 쓸쓸함이 고스란히 배어 있는 듯한 인상을 받기도 했다.

장미마을은 인근 싸전 때문에 생겨났다. 현금이 잘 돌자 주막이 속속 들어섰다. 초창기에는 단순히 술만 마시던 요정(방석집)이었다고 한다. 하지만 시대가 흐르고 도시가 개발되다 보니 1990년대부터 유흥주점으로 업종이 변경되고 이 과정에서 집단화돼 자연적으로 성매매촌이 형성됐다. 손님을 끌기 위해 여성을 고용하는 집도 갈수록 늘면서 최대 호황을 누리던 한때는 성매매업소가 80여 곳이나 몰려있던 적도 있었다. 유흥업소가 생기면서 덩달아 인근에는 여인숙도 늘어났다. 아산은 온양온천과 도고온천의 인기에 국내에서 손꼽히는 신혼여행지였는데도 집창촌 또한 호황이었다. 장미마을이 유명해지자 당진, 예산 등 인접지에서 추수를 끝낸 농민이나 먼바다에 갔다 온 뱃사람들이 '원정'을 오는가 하면 일본인의 매춘 관광도 적지 않았다고 한다. 예전에 장미마을은 미아리골목이라고 불렸다고 한다. 하지만 어떻게 현재의 장미마을이라는 이름이 붙여졌는지에 대해서 아는 이는 없다. 그냥 언제부턴가 이 마을이 장미마을로 불려졌다는 게 전부다.

한때 충남 최대의 성매매 우려지역으로 알려졌던 장미마을도 이제는 역사 속으로 사라진다. 도시 이미지를 해치던 장미마을은 도시재생으로 사회적경제기업·청년창업의 메카로 탈바꿈하게 된다. 시는 장미마을 내 세븐모텔을 13억원에 매입, 리모델링을 통해 사회적 기업, 청년 창업·창작 공간으로 조성하고 있다. 또 여성가족부와 손잡고 성매매 집결지인 장미마을을 여성 인권의 상징으로 재정비도 추진 중이다. 본격적인 도시재생 사업을 위해 유흥업소 건물도 철거 중이다.

장미마을과 싸전지역 사이에는 온천천이 흐르고 있다. 온천천은 아산의 중심상권 지역에 위치하고 있으며 과거 온양행궁을 끼고도는 하천으로 조선왕조 여섯 임금이 정사의 시름을 보듬은 역사가 있는 장소였다. 또한 서민들이 그 물이 얼마나 맑았으면 온천천 하류 실옥동에 옥정(玉亭)이라는 정자를 짓고 풍류를 즐겼으며 물 놀이터와 미나리 밭으로 기억되는 친수와 생태공간이 있는 하천으로도 알려져 있다. 하지만 도시의 발달과 온양온천의 13개 온천공에서 취수된 온천수가 버려져 높은 수온과 오염된 물이 모이는 하수도로 사용되며 악취를 풍기며 하천으로서의 생명을 잃는 등 사람들로부터 외면당했다. 그러다 6년여간 온천천 생태복원 사업을 진행해 시는 지난 2015년 마무리했다. 이 사업은 온양관광호텔부터 경남아파트까지 총 0.98㎞ 구간에 걸쳐 총사업비 496억 원이 투입됐다. 환경 친화적인 생태하천으로 탈바꿈한 온천천은 피라미, 밀어 등 물고기 7종과 참개구리 등 양서류 17종의 서식하며 생태하천으로 완전히 되살아 났다. 더불어 현재 아산시민들의 나들이명소로도 자리매김 했다.

주민들의 추억과 삶의 흔적이 묻어있는 곳이 이제 변화를 맞이할 준비를 하고 있다. 겉모습이 바뀌어도 주민들이 이곳에서 하루하루 쌓아가는 삶은 또 다른 추억을 선물해 줄 것이라 기대한다. 황진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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첨부사진2아산시 온천동 싸전. 사진=황진현 기자
첨부사진3환경 친화적인 생태하천으로 탈바꿈한 온천천. 사진=황진현 기자
첨부사진4환경 친화적인 생태하천으로 탈바꿈한 온천천. 사진=황진현 기자
첨부사진5아산시가 성매매 우려지역인 장미마을 내 세븐모텔을 매입해 사회적 경제·청년창업 공간으로 조성을 위한 공사를 하고 있다. 사진=황진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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