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말 문익점 선생과 목화 전래에 대한 대중적인 인식과 역사적 사실을 풀어 신문 칼럼으로 소개한 바 있는데, 이에 더불어 흥미 있는 얘기가 있어 소개하고자 한다. 문익점 선생과 목화 이야기는 세간에 널리 알려진 얘기라 생략하고 역사적 `사실(史實)`을 간단히 소개하기로 한다. `우리역사의 수수께끼(이덕일)`에 따르면 고려 말 공민왕(1363년) 시절 목화씨를 가져올 당시 목화는 원나라의 반출금지 품목이 아니었다는 것이다. 그동안 잘못 알려진 대로 보면 목화씨를 붓대 속에 몰래 숨겨 들어와 국내에서 재배하고 옷감으로 활용했다면 문익점 선생은 범법자로 봐도 무방하다. 원나라 입장에서 보면 전략자원 밀반출범이고 우리나라 입장으로 보면 밀수범을 각오한 애국자가 되니 말이다. 그러나 다행히도 목화는 그 당시 반출금지 대상이 아니니 문익점 선생도 범법자가 아니었다. 그렇다면 오늘날 외국의 씨앗(유전자원)을 몰래 들여와 국내에서 이용했다면 어떻게 될까. 앞으로는 이러한 행위는 생물해적으로 고발당하는 신세가 될 것이다. 왜 그럴까.

올해 8월 `나고야의정서`가 국내에서도 본격적으로 시행되기 때문이다. 나고야의정서는 외국의 유전자원을 수입하려면 해당 국가의 허가를 받아야 하며, 이 자원을 활용해 얻은 이익을 해당 국가에 일정부분 나누어줘야 한다는 국제조약이다. 다시 말하면, 고려 때 문익점이 목화씨를 가져오려면 원나라의 허가를 받아야 하며 목화로 옷을 해 입었다면 원나라에 로얄티를 줘야한다는 말이다. 따라서 나고야의정서 체제에서는 로열티 지급 등으로 인해 유전자원을 이용하는 산업부문의 추가 부담 증가는 당연한 수순일 것이다. 즉, 유전자원 수입국은 부담이 가중되는 반면, 유전자원 수출국은 그만큼의 경제적 이익을 얻는 상황이 전개될 것이다. 그러면 우리나라는 어떠한가. 유전자원은 의약품, 식품, 화장품 등 우리 생활에 밀접한 바이오산업의 원료로 사용되는 생물자원인데, 우리나라는 약 67% 가량을 수입에 의존하고 있다. 그에 따른 피해액이 수 백억 원에서 조단위까지 거론되고 있는 실정이다. 만약 우리나라가 수출할 생물자원이 풍부한 국가라면 상당한 이득을 볼 수 있다.

여기에서 시간을 거슬러 가정을 한번 해보자. 현재의 나고야의정서에 따라 문익점의 목화를 일본에 수출했다면 막대한 이익을 거두지 않았을까. 문익점은 원나라에서 가져온 목화의 재배법을 알지 못한 것이 당면한 가장 큰 난관이었다. 원나라와 고려의 풍토가 다르니 당연한 문제였을 것이다. 반입한 씨앗 중 겨우 한그루를 간신히 살려냈고, 이후 장인 정천익과 함께 3년간의 노력 끝에 재배기술을 터득해 냈고 목화를 전국에 보급할 수 있었다. 또한 천을 짜기 위한 목화씨 제거(씨아)와 실을 뽑는 방법(물레)을 함께 개발 전파해 백성들의 의복생활에 혁명적 변화를 선도했다.

그런데 국내에서 재배되던 목화가 일본에도 전파된 것은 15-16세기 즈음으로 알려진다(더 씨드(The Seed), 전경일). 일본 전국시대를 배경으로 그린 선풍적인 인기 소설 `도쿠가와 이에야스(국내명 대망)`에도 그런 정황들이 일부 언급되고 있다. 이에야스의 어머니가 시집올 때 가져와 나눠준 목화씨로 인해 주변 백성의 인기를 얻어가는 것에서 알 수 있듯이, 당시 일본은 목화의 이용 계층이 일부 귀족에 국한돼 일반 백성들에게까지 널리 전파되지 않았던 작물인 듯하다. 이후 일본 전역으로 점차 전파돼 우리나라에서와 유사하게 일본 백성들의 의복 혁명이 일어난 것으로 보인다. 역설적이게도 우리나라에서 전래된 목화는 임진왜란 당시 엄청난 피해를 끼친 조총의 화약심지로 활용되기도 한 것으로 보인다. 더구나 목화는 도요타 자동차의 전신인 토요타자동직기주식회사 탄생의 씨앗이 된다. 이 회사 창업자는 직기 개발에 노력해 인력 직기를 동력 직기로, 더 나아가 자동직기로 발전시킨다. 또한 평면 직기를 환상(環狀)직기로 개발해 혁신적인 발전을 이뤄내고 부를 축적해 마침내 산업의 패러다임 전환기인 20세기 초 토요타자동차를 출범시킨다. 토요타자동차는 이미 전 세계적인 기업의 반열에 올라있고 우리 주위에 흔히 볼 수 있는 자동차 제조사가 된 것이다. 그렇다면 현재의 나고야의정서에 따른다면 문익점의 목화는 얼마의 로얄티를 받아야할까.

오늘날 세계적인 자동차 회사의 출현이 약 650년 전 문익점 선생의 한알 목화씨로부터 연결돼 있다는 사실을 보니 놀라울 따름이다. 한편으로 임진왜란과 일제식민지 등의 단어에 결부되면 역사적 아이러니에 심사가 오락가락하기도 하지만 한알의 유전자원이 갖는 파급력에 경의를 표해야 할 것 같다. 고려말 문익점 선생의 역사적 공로는 말할 수 없을 만큼 지대하다고 본다. 더불어 유용한 씨앗의 가치를 알아본 높은 안목, 그러한 외래종자의 재배기술 개발을 위한 각고의 노력, 헐벗은 백성들에게 전파한 애민정신 등은 나고야의정서라는 새로운 국제적 규제체제하에서 이를 어떻게 슬기롭게 대응해 나갈 것인지를 고민하는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적지 않은 것 같다. 장영효 한국생명공학연구원 ABS연구지원센터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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