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과 중국이 정면충돌하면서 G2 간의 통상전쟁이 과연 어디까지 갈지가 초미의 관심사로 떠올랐다. 트럼프 대통령은 미국의 대중 상품수지 적자는 근본적으로 중국의 불공정행위 때문에 주로 발생하고 있으니 지난해 적자규모의 1/4이 넘는 1000억 달러를 무조건 줄이라고 요구했다. 또 중국의 지적재산권 침해에 대응해 1300개 품목에 25%의 징벌적 관세를 부과하는 행정명령에도 이미 서명했다. 중국도 분을 삭이지 못하고 100개가 넘는 미국산 수입상품에 15-25%의 보복관세를 부과하는 카운터펀치로 즉각 응수했다.

바야흐로 선진국 간 관세장벽 쌓기 경쟁으로 세계교역이 급감하고 경기가 가파르게 침체하면서 세계 대공황을 불러왔던 1930년대의 악몽이 되살아날 것이라는 섣부른 예측까지 나오고 있다.

되돌아보면 미국이 세계의 지도국으로 군림해 온 것은 국제사회가 호응한 합리적인 원칙과 참여국 모두에게 이익을 줄 것이라는 자유무역의 기치가 발판이 됐다. 미국은 대외질서에서 던지는 메시지와 실제 행동 간의 격차가 가장 작은 나라였기 때문에 전 세계가 미국을 신뢰해 왔다. 그러나 글로벌 금융위기로 호흡이 가빠지면서 10여 년 전부터 능력과 합리성에 한계를 드러내기 시작했다. 자국이 중심이 되어 설계한 국제질서의 유지를 위한 분담금 납부나 대외무역정책에서 고개를 갸웃거릴 행태를 보이고 있는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이 미국에 도움이 되지 않는 무역협정은 더 이상 필요 없다고 천명한 것도 이런 맥락으로 이해해야 할 것이다.

반면 중국은 과거 죽의 장막을 치고 규제와 무역장벽으로 국익을 방어해 왔다. 그러나 1978년 시장화를 지향하는 개혁과 세계화를 추구하는 개방정책을 추진한지 올해로 40년을 맞으면서 미국과 입장이 서서히 뒤바뀌고 있다. 이를테면 중국은 2001년 세계무역기구(WTO)에 가입할 때 국내 유치산업이 와해될 것으로 우려했으나, 수출이 효자 노릇을 하면서 결과적으로 WTO 체제의 최대 수혜국으로 떠올랐다. 또 외환대국으로 부상하자 글로벌 금융위기로 자금줄이 막힌 국제기구와 유럽으로부터 애타는 구애의 눈길을 받기도 했다. 이렇게 자신감을 얻은 시진핑 주석은 중국이 자유무역을 수호할 것이라고 호언장담해 왔다. 이 와중에 트럼프 행정부가 한미FTA를 포함한 동맹국과의 무역협정을 송두리째 흔들고 보호무역주의를 내세우니, 미중 간의 입장이 거꾸로 되고 국제사회가 혼란해진 것이다.

미중 양강이 국익을 앞세우고 격돌하면 우리에게는 어떤 영향이 파급되고, 그 틈바구니에서 우리가 살길은 무엇일까.

우선 미국이 중국을 압박하면 중국의 대미수출이 위축되고, 대중 중간재 수출비중이 78%에 이르는 우리의 수출 길도 험난해질 것이다. 물론 국제경쟁에서 대중 경합도가 높은 휴대폰, TV, 모니터, 전기전자제품 등 일부는 대미수출에서 반사이익을 향유할 수도 있을 것이다.

둘째 국제무역질서에서도 우리의 선택이 한층 어려워지고 있다. 혹자는 미국이든 중국이든 주도국에 상관없이 상황(case by case)에 따라 민첩하게 줄타기를 해야 한다고 하고, 혹자는 그렇게 행동하다가는 강대국의 버림을 받을 것이라고 우려하기도 한다. 이를테면 전임 대통령이 공들여 구축한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을 취임하자마자 발로 차버렸던 트럼프 대통령이 TPP가 중국 견제에 유용하다는 점을 뒤늦게 깨닫고 있는 듯하다. 그래서 일본이 난파 직전의 TPP를 수습해 새 단장을 한 포괄적·점진적 TPP(CATPP)가 명분만 제시하면 미국이 회군하면서 몸값이 크게 뛸 것이니, 영국과 태국처럼 우리도 늦기 전에 일단 발을 들여놓자는 논의가 나오는 것이다.

앞으로 세계는 미중 양국이 자국주도 질서에 모집(recruiting) 경쟁을 벌이면서 각국이 국익에 따라 이합집산을 거듭할 것이다. 우리는 양강의 전략적 경쟁구도에 휘말려 들어가지 말고, 명분보다는 실사구시를 추구해야 되지 않을까. 임호열 경기대학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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