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6일 문재인 대통령의 개헌안 발의로 개헌열차가 본궤도에 올랐다. 하지만 `행정수도 명문화`가 아닌 `수도규정 법률위임` 등을 담고 있는 대통령 개헌안이 원안대로 국회를 통과할 가능성은 희박하다. 우선 대통령 개헌안의 발의 과정과 내용을 살펴보면 야당의 동의를 이끌어내기가 쉽지 않다. 진보좌파의 이념을 일방적으로 뒷받침한다는 한국당의 평가가 아닐지라도 각계각층의 여론을 제대로 수렴한 국민개헌안으로 보기에는 절차적으로 무리가 따른다. 지난 달 7일 문 대통령의 지시로 개헌안 마련에 착수한 국민헌법자문특위는 활동개시 한 달 남짓 만에 최종 자문 안을 내놨다. 그러나 이 과정에서 전체회의는 4번에 불과했으며, 권역별 토론회도 4차례밖에 하지 못했다. 정해구 위원장조차 수시로 "시간이 촉박하다"거나 "의견수렴에 한계가 있었다"고 토로했을 정도다. 신고리 원전 5·6호기의 경우 각종 공론조사 등을 통해 4개월 넘게 토론을 거친 점을 감안하면, 이보다 훨씬 광범위한 개헌을 준비하기에는 턱없이 부족한 시간이었음이 분명하다.

무엇보다 물리적으로 불가능하다. 제1 야당인 한국당(116석) 만으로도 개헌저지선(96석)을 이미 넘어선다. 이들은 표결시 본회의 불참까지 언급할 정도로 반대 기조가 역력하다. 나아가 중도보수를 지향하는 바른미래당은 물론 현 정부에 비교적 협조적인 민주평화당과 정의당까지 원안 처리에 대해서는 부정적이다.

그렇다면 아무런 대안 없이 대통령 개헌안이 국회에서 부결될 가능성은 어떨까. 여야가 합의된 개헌안을 도출해내지 못할 경우 가능성이 높은 시나리오지만, 결코 현실화되지 말아야 할 최악의 상황이다. 대통령을 포함한 여야 모두 책임회피를 위한 치열한 정쟁에만 골몰할테고, 극심한 국론분열에 휩싸일 것이다. 30년 된 낡은 헌법을 고칠 동력은 사라지고, 그 피해는 고스란히 국민 몫으로 남을 수 밖에 없다. 국회가 어떤 식으로든 합의를 도출해야만 하는 이유다.

결국 대통령 개헌안이 아닌 국회 개헌안이 나와야 하는데, 그 방법은 두가지다. 대통령과 정부여당에서 요구하는 것처럼 6·13 전국지방선거일에 개헌 국민투표가 동시에 치러질 수 있도록 국회 개헌안을 만들거나, 한국당을 포함한 야권의 주장대로 시기를 지방선거로 못박지 않는 방법이다.

냉정히 따져보면 두 경우의 수 모두 개헌 시기의 문제일 뿐, 행정수도 명문화를 위한 답은 명확하다. 여야 합의과정에서 행정수도 명문화에 뜻을 모으기만 하면 된다. 집권여당인 민주당은 대통령개헌안 발의 전 이미 당론을 통해 헌법에 행정수도를 명시하도록 정했으니, 이를 유지하면 된다. 한국당도 지난 대선에서 명확히 약속했던 공약이니 만큼, 당론을 만들어가는 과정에 이를 담아내면 될 것이다.

문제는 여야 모두 특별히 반대할 이유가 없지만, 관심사항에서 빗겨나 있지 않을까 우려된다는 점이다. 또 행정수도를 충청권에 대한 선심성 공약정도로 받아들이는 일부 정치세력이 있다는 점도 문제다. 심지어 청와대 고위 관계자가 대통령개헌안에 대해 부연 설명하는 과정에서 "행정수도는 세종시만 관심 있는 것 같다"고 말할 정도다.

세종시가 명실상부한 행정수도가 된다 해서 충청에 미칠 파급효과는 그리 크지 않다. 오히려 기업도시나 혁신도시가 경제적 측면에서 훨씬 유리할 수 있다는 게 중론이다. 그럼에도 행정수도를 고집하는 것은 지리적 측면에서 국토균형발전을 도모할 수 있고, 지방분권의 상징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를 위해선 헌법 명문화가 반드시 필요하다. 법률로 위임할 경우 정파적 이해에 따라 언제든지 흔들릴 수 있는 것 아닌가.

이제 국회가 답할 차례다. 여당의 밀어붙이는 모양새는 독선 또는 오기로 오해될 우려가 크다. 야당의 소극적 자세 또한 선거를 앞둔 정치적 계산으로 비쳐질 가능성이 높다. 충청은 물론 지방분권과 균형발전을 염원하는 모든 주권자들을 위해 지혜를 모아야 하는 의무가 그들에게 있다. 송충원 서울지사 부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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