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팔도유람] 한신협 공동기획-경기도 '술' 여행

전통술의 제조과정과 역사를 알 수 있는 술 문화공간, 산사원. 사진=경기관광공사 제공
전통술의 제조과정과 역사를 알 수 있는 술 문화공간, 산사원. 사진=경기관광공사 제공
"여보게, 봄 술이나 한잔 하세"

`하물며 지금 살구꽃이 살짝 폈고 봄기운이 확 풀려 사람의 마음을 도취시키고 다감하게 만드니, 이와 같은 좋은 계절에 마시지 않고 무얼 하겠습니까?`

도저히 건네는 술 한잔을 받아들지 않고는 못 배길 문장이다. 고려 500여 년 역사를 통틀어 가장 뛰어났다 평가받는 이규보는 봄 기운을 빌어 술의 미덕을 예찬했다. 그는 함께 마시길 원하는 지인에게 귀여운 협박(?)도 건넨다. `이군, 박환고 등과 함께 와서 마시기를 바랍니다. 그렇지 않으면 우리 집 술이 며칠 내 다 말라 버릴 것이니, 뒤늦게 방문한다면 차만 마시게 될 것입니다.`

따뜻한 봄볕이 대지를 감싸 안는다. 겨우내 웅크렸던 꽃봉오리가 고개를 내밀며 봄 인사를 건넨다. 이제 완연한 봄이다. 그리고 꼭 술집이 아니라도 분위기 좋은 야외의 카페에선 와인, 뱅쇼를 음료처럼 팔기도 하고, 꽃 구경 나갔다 구수한 막걸리 한 잔 먹는 것도 `낭만`이 되는 시대다.

이규보의 표현대로라면, 우리는 봄 기운에 취해야 한다. 와인여행을 비행기 타고 갈 것 없다. 경기도에도 지역의 특색을 살린 꽤 괜찮은 와인 산지가 있다. 전국에서 가장 맛있는 막걸리로 손꼽히는 양조장도 경기도에 있다.

△그윽한 경기도 와인 산지 -파주 산머루, 안산 대부도 그랑고또, 양평 허니비 와인

파주의 산머루 와인은 `머루`가 와인의 주재료다. 산머루 농원은 악 소리가 날 만큼 산세가 험하다는 감악산 자락에 위치했다. 밤낮의 기온차가 심하고 일조량이 풍부하다. 머루를 재배하기엔 최적의 장소인 셈이다. 1979년부터 머루 재배를 시작했고 현재는 친환경 농업을 실천하며 연간 400여 톤의 산머루를 수확한다.

특히 9~10월 중순에 수확된 산머루는 당도가 높아 이 곳에서 만드는 고품질 와인 `머루드서`의 주 재료가 된다. 머루드서는 머루 특유의 상큼한 향과 함께 부드러운 맛이 일품이다.

또 농원은 와인 생산시설과 숙성터널을 둘러볼 수 있고 머루와인을 시음할 수 있는 체험 패키지를 운영한다. 와인을 직접 병에 담고 직접 사진으로 라벨을 만들어 붙이는 `나만의 와인` 프로그램도 운영한다.

안산 대부도는 하늘과 바다가 주는 선물이 가득하다. 넓은 갯벌에는 해산물이 가득하고, 따가울 만큼 쏟아지는 햇살은 달콤한 포도를 영글게 한다. 와인의 품질은 포도밭에서 결정되는데, 대부도는 사계절 모두 햇빛이 풍부하고 낮과 밤의 일교차가 커 포도밭 조건을 다 갖추고 있다. 여기에 온화한 해풍, 미네랄 가득한 흙은 금상첨화다. 천혜의 조건을 바탕으로 대부도 30여 개 포도농가는 기술과 정성을 더해 `그린영농조합`을 결성했고, 한국산 와인의 대표브랜드인 `그랑꼬또`를 제조했다. 이미 `와인러버(lover)` 사이에선 입소문이 날 만큼 유명한 그랑꼬또는 한국인의 입맛과 한식에 잘 어울린다는 평가를 받는다.

양평 허니비 와인은 `꿀`과 와인의 이색적인 조합이 눈길을 끈다. 와인 천국인 유럽에서도 와인에 꿀을 넣어 뱅쇼, 멀드 와인으로 즐기긴 하지만, 과연 한국 와인과 꿀의 조합은 어떨까 궁금증을 자아낸다.

양평 허니비 와인은 꿀에 효모를 더해 당분을 알콜로 발효시킨 꿀와인이다. 단순히 꿀을 섞은 와인과는 차원이 다른데, 단맛이 매우 강할 것이란 예상은 편견에 불과하다. 맛은 일반적인 스위트와인보다 달지 않고 더 부드럽고 고급스러운 맛을 연출한다. 독특한 맛 덕분일까. 허니비 와인은 출시된 해(2012년)에 한국주류품평회에서 `대상`을 수상했다. 또 2014년부터는 국제 주류품평회 `몽드컬렉션`에서 수차례 수상의 영광을 안았다.

허니비와인을 개발·생산하는 아이비영농조합은 올 봄부터 1등급 꿀의 맛과 가치를 알리기 위해 벌통 50개를 일반에게 분양할 계획이기도 하다.

△구수한 경기도 막걸리 - 양평 지평막걸리, 포천 산사원

지평 막걸리는 맛있는 막걸리의 대명사다. 양조장 건물은 대한민국 근대문화유산으로 지정될 만큼 역사와 전통을 자랑한다. 지평 막걸리의 역사는 일제강점기에서 시작한다. 1925년 양평군 지평면의 지평주조장이 생기며 100년 동안 4대를 이어 전통주조방식을 고수한다.

양조장 건물은 처음부터 막걸리 주조를 위해 설계됐다. 지붕 위 통풍 장치와 천장 사이의 마련된 왕겨층 공간이 온도와 습도를 자연적으로 조절, 최상의 막걸리 맛을 유지한다. 막걸리 맛을 좌우하는 누룩 또한 향균 작용과 습도조절 능력이 뛰어난 오동나무 상자를 이용해 배양한다.

어느 것 하나 허투루 하는 것이 없다. 지평 막걸리의 인기가 높아지면서 물량이 늘어 현대식 양조장도 증설됐지만, 여전히 지평 막걸리는 대형 항아리에서 발효와 숙성과정을 거친다. 누룩도 옛 양조장 건물에서 배양한다. 특유의 부드러움과 달달하면서 시큼한 맛은 그냥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다.

포천 산사원은 술을 제조하는 양조장은 아니다. 하지만 애주가라면 결코 지나칠 수 없는 장소다. 술 문화 관련 자료를 모아놓은 `전통 술 박물관`이기 때문이다. 자료를 구경하는 것도 매력이지만, 다양한 술을 시음하고 체험하는 술 문화 공간으로 조성됐기 때문에 애주가의 사랑을 받을 수 밖에 없다.

이 곳에는 `누룩틀`과 `소주고리` 등 전통술을 제조하는 주기와 국내에서 보기 힘든 고서 등 역사 자료 1천여 점이 전시됐다. 또 `김씨부인 양주기`를 통해 전통 술 제조과정을 자세히 설명하고 술의 재료인 쌀과 누룩, 산사열매, 매실, 한약재 등 각종 재료를 직접 볼 수 있다.

1층에 위치한 시음마당에는 이곳을 운영하는 배상면주가의 `생술`과 `세시주` 등 20여 종의 전통술을 시음할 수 있고 술지개미를 활용한 음식도 시식할 수 있다.

더불어 방문객들이 술을 직접 빚어보는 `가양주 교실`을 운영하고 있다. 한신협 경인일보=공지영 기자

<저작권자ⓒ대전일보사. 무단전재-재배포 금지>

양평 내 전통시장에서 지평막걸리를 즐기는 관광객들. 사진=경기관광공사 제공
양평 내 전통시장에서 지평막걸리를 즐기는 관광객들. 사진=경기관광공사 제공
꿀과 와인을 발효시키는 허니비 와인. 최상품의 꿀을 양봉하고 있는 모습. 사진=경기관광공사 제공
꿀과 와인을 발효시키는 허니비 와인. 최상품의 꿀을 양봉하고 있는 모습. 사진=경기관광공사 제공
파주 감악산에 위치한 산머루농원은 친환경적으로 재배한 머루를 이용해 와인을 생산한다. 산머루농원 안에서 와인을 직접 시음할 수 있다. 사진=경기관광공사 제공
파주 감악산에 위치한 산머루농원은 친환경적으로 재배한 머루를 이용해 와인을 생산한다. 산머루농원 안에서 와인을 직접 시음할 수 있다. 사진=경기관광공사 제공

저작권자 © 대전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