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흔히 사용하는 `버킷리스트(bucket list)`는 죽기 전에 반드시 해봐야 할 일들을 적은 목록을 말한다.

이는 `Kick the Bucket`이라는 말에서 나왔는데 중세시대에 자살할 때 목에 밧줄을 감고 양동이를 차 버리는 행위에서 유래되었다고 한다. 필자의 버킷리스트에는 오래전부터 세 가지가 적혀 있다.

오토바이 타보기, 락 밴드의 기타리스트가 되 보기, 바닷가에서 멋지게 트럼펫 불어보기 이다. 이 중 두 가지는 아직 해보지 못했다. 누구나가 가지고 있을 이 리스트에 주로 등장하는 것 중의 하나는 나만의 집을 짓고 살아보는 것 일 것이다. 그림 같은 집 말이다.

건축사는 그런 꿈을 실현시켜주는 데 꼭 필요한 사람이다. 건축주가 될 의뢰인이 찾아오면 설계를 하기 전에 `위시 리스트(wish list)`를 작성해 달라고 요청 한다. 위시리스트는 버킷리스트에 오른 항목의 구체적인 계획이라고 할 수 있다. 집을 지을 때 꼭 필요한 희망요소 목록이다. 필자도 프로젝트마다 위시리스트를 받고 있는데 그 내용들을 보면 상당히 구체적이다. 인터넷을 통한 많은 정보가 의뢰인의 가족 구성원과 직업, 취향, 기억들과 버무려져 쓰여 진다.

예를 들면 원하는 방의 개수, 주방의 위치 혹은 다용도실과 드레스룸의 크기, 벽난로와 서재의 유무, 침대의 머리 방향, 욕조의 유무, 지붕의 스타일, 실내외 마감 재료의 종류, 위생기구의 브랜드 등 A4용지 서너 장은 족히 채우고도 남는다. 여기에 풍수지리를 중시하는 분들은 곱절은 더 리스트 목록이 많아지게 마련이다.

이 리스트를 염두에 두고 건축사는 빈 대지위에 선을 그리기 시작 한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항상 빠지는 딜레마가 있다. 건축주의 요구조건을 다 반영하자니 조건끼리 서로 충돌하는 경우가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건축사 맘대로 설계 할 수도 없는 일이다. 내가 살 집이 아니기 때문이다. 여기서 건축사는 능력을 발휘해야 한다. 요구 사항 중 불합리한 점을 충분히 이해시키고 건축 디자인으로 해결하여야 한다. 어떤 경우는 리스트를 수정해야 하는 경우도 많다. 건축주의 요구를 그대로 설계에 반영하면 일은 쉬워지겠으나 그러면 건축사는 도면을 그리고 인·허가를 대행해주는 단순 기능인의 역할에 머무를 수 밖에 없다. 그런 경우 결코 만족스런 결과가 나올 수 없다는 것은 자명한 일이다. 건축사 역시 자기 집을 지을 때 위시리스트를 쉽게 만들 수 있을 것 같지만 역설적이게도 결코 그렇지 못하다. 머릿속으로 집 한 채를 다 지어야 하기 때문이다. 이 지점에서 필자는 건축사가 만나고 싶어 하는 건축주 위시 리스트를 작성해 본다. 건축사를 신뢰하는 건축주, 일을 시작하기 전에 계약을 하는 건축주, 신뢰 한 만큼 설계비를 지불하는 건축주, 만족스런 결과물이 나왔을 때 건축사의 능력을 인정해 주는 건축주. 하지만 이 리스트에서 건축사와 건축주를 바꾸고 단어의 배열만 약간 수정하면 건축주가 만나고 싶어 하는 건축사 위시 리스트가 될 수 있다는 것은 항상 명심해야 할 것이다. 조한묵 건축사사무소 YEHA 대표 건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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