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자리는 예나 지금이나 선진국의 최우선 아젠다이다. 10여 년전에 스탠포드 대학 연구센터를 방문할 기회가 있었는데 지원받은 운영비를 인건비로만 사용해야 한다는 조건을 보고 많이 놀랐다. 우리는 반대로 장비구입이나 재료비 등에만 쓸 수 있는 구조였다. 스웨덴의 시스타(KISTA) 사이언스시티는 우리의 연구개발특구와 비슷한 곳이다. 그 기관의 2012년 목표는 5년 동안 5000명의 고용을 늘리고, 3000명의 주민과 1000명의 학생을 끌어들이겠다는 것이었다.

최근 우리 정부도 놀랄만한 일자리 정책을 내놓고 있다. 중소기업에 취직하면 대기업과의 임금격차를 메꿔주겠다는 정책도 나왔다. 또한 정부R&D 수행기업이 청년을 채용하면 인건비의 50%를 정부에 납부할 기술료에서 감면해주고, 민간부담금을 신규채용 인건비만큼 빼주기로 했다.

이렇게 정부에서는 일자리를 늘리기 위해 파격적인 정책을 펼치는데, 한편으로는 과학기술이 발전하면 인공지능이나 로봇 때문에 일자리가 줄어든다는 우려가 있다. 그런 기술을 개발하면 나쁜 일을 하게 되는 것인지 우려하는 연구자도 있다. 일례로 1960년대에는 전화교환원이 수동으로 전화를 연결해 줬는데 ETRI가 전자교환기를 개발해 전화교환원 일자리는 없어졌다. 과연 과학기술이 일자리를 없앤 것일까. 필자는 완전히 반대라고 생각한다. 기술이 일자리를 없애는 것이 아니라 기술이 없으면 일자리가 없어진다. 왜냐하면 일자리에는 시대와 국경이 있기 때문이다. 일자리는 문명의 발전에 따라 시대와 국경을 건너가 버린다. 지금은 우리가 반도체와 자동차를 많이 수출하지만, 기술력이 떨어지면 판매가 줄어들 것이고 결국 일자리를 지키지 못할 것이다. 시대에 맞는 새로운 일자리를 만들지 못하면 전화교환원처럼 자연스럽게 소멸하는 일자리를 메우지 못하게 된다.

세계적으로 노동시장이 계속 불안정해 진다고 한다. 2027년 미국 일자리 58%가 프리랜서일 것이라는 예측도 있다. 우버의 드라이브 파트너, 아마존의 배송요원 등이 그런 경우이다. 이런 불안한 일자리는 서비스업종에 많을 것이고, 다행히 우리가 강한 제조업분야는 안정적인 일자리가 유지될 것 같다.

그러면 대덕특구의 연구소는 어떻게 일자리에 기여해야 할까. 우선은 기업이 글로벌 경쟁력을 갖춰서 꾸준히 일자리를 창출할 수 있도록 도와야 한다. 곧 경쟁력이 떨어질 굴뚝기업이 새로운 분야로 전환하도록 도울 수 있다. 그리고 연구과제를 기획할 때 일자리 창출 효과가 큰 주제를 잡아야 한다. 연구개발특구진흥재단도 유망기술을 찾아 이전시키고 후속 기술사업화를 지원하는 전 과정에서 고용효과를 고려해 지원할 예정이다.

둘째, 연구소가 창업지원에 적극 나서야 한다. 좋은 기술을 창업자에게 공급해 초기부터 기술경쟁력을 확보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중요하다. 연구자가 직접 창업하기 어려우면 기업가와 협력하면 된다. 특히 연구소가 지분을 출자해 설립한 연구소기업은 기술의 원천성이 있어서 일반 기업보다 지속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한국과학기술지주와 미래과학기술지주가 출범한지 5년째 접어들면서 그동안 연구소발 창업이 활성화되었고 대전에 뿌리를 둔 투자전문회사도 늘어나 창업생태계가 많이 좋아졌다.

전문가들은 여기에 머무르지 말고 대덕특구를 기술창업의 메카로 만들어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며칠 전 한국은행 대전충남본부가 주최한 포럼에서 충남대 안기돈 교수는 대전에 스타트업 타운을 건설해야 한다고 발표했는데 그와 비슷한 의견을 가진 전문가들이 많다. 현재 스타트업은 각 연구소나 대학의 창업보육센터에 입주해 있다. 대부분 공간여유가 부족하고 흩어져 있어서 창업자간 교류가 어렵다. 연구소와 대학이 연합해 대덕에 500개 이상의 스타트업이 입주할 수 있는 대규모 스타트업 타운을 만들면 창업자간 교류가 활발해지고 활력이 넘칠 것이다. 자연스럽게 스타트업을 지원하는 서비스 기업이나 투자기관도 몰려들 것이다. 청년들은 그곳에 가서 창업을 꿈꾸거나 일자리를 구할 수 있을 것이다. 고급 일자리를 만들 저력이 있는 대덕연구개발특구가 새로운 물결을 일으킬 때다. 윤병한 연구개발특구진흥재단 대덕연구개발특구본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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