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은 다른 과학과 같은 분야와는 달리, 정답이 없어서 무엇이 옳고 그르다고 말하기 어렵다. 이렇듯 주관적인 상상력의 소산인 예술이 당 시대의 흐름과 유행에 영향을 받는 것은 명백한 사실이다. 고전시대를 대표했던 소나타 형식은 낭만시대에는 성격 소품이나 교향시와 같은 형식의 대표작들로 그 주류가 바뀌었던 사실만 보아도 알 수 있다. 유행이기 때문에 비슷하다 못해, 단순히 모방을 한 것이 아닌, 표절로 의심과 오해를 받을 수 있는 작품들이 많다. 쇼팽의 수많은 작품들이 표절과 원본(originality)의 경계선에서 비난을 받았지만 어쩌면, 쇼팽이기 때문에 잘 넘어 갔을 수 있었는지도 모른다.

미국의 20세기 작곡가 찰스 아이브스의 작품들은 베토벤의 `운명 교향곡`의 주제에서부터 멘델스존의 `결혼 행진곡` 주제와 찬송가 주제 등을 암시(imply)하는 수준이 아닌 그야말로 잘라 붙이기(cut and paste)한 듯 너무나도 당당하게 모방을 했지만, 그는 소위 "인용(quotation)"이라는, 새로운 작곡기법이라 할 수 있는 용어(terminology)로 그 어떠한 도덕적으로나 법적으로나 손색이 없는 창의력을 발휘 했다.

이렇게 표절이라는 비난은커녕 새로운 작곡법으로 당대의 뛰어난 작곡가로 자리매김한 데에는 아이브스 자신의 탁월한 재능과 음악적 깊이가 한 몫 했지만 또한 그의 작곡가 이전의 독특한 경력의 영향도 배제 할 수 없다고 생각한다. 작곡이라는 음악 활동이 생계 수단이 되면 자신의 창작 활동에 제한적인 영향을 미칠 것을 우려해 일찌감치 사업 전선에 뛰어든 아이브스는 매우 성공한 CEO로서 보험회사의 대표가 되었고 덕분에 먹고 사는 것과 무관하게 자비로 작곡 발표와 출판을 했다. 누구에게도 어떤 상황에도 예속될 필요 없었던 그는 창작 과정에서 기존의 작품 일부를 자신의 아이디어에 따라 자유롭고 대담하게 "인용(quotation)"했고 이러한 기법을 그 누구도 비난할 수 없는 새로운 용어와 새로운 작곡법으로 음악사에 자리매김 했다. 다른 작곡가의 작품 중 일부분의 인용을 숨기기보다, 의도적으로 사용했음을 명백히 밝혔으니 독창적인 창의성에서는 조금 흠이 있고 부족하다고 볼 수도 있지만, 과감하고 새로운 시도라는 사실은 부인 할 수 없을 뿐 아니라 무엇보다도 표절이라는 죄명을 씌울 수 없게 사전 조치를 확실히 해놓았기에 스스로를 선험적인 작곡가(transcendentalist)라 자부하고 또한 세상으로부터 인정받은 작곡가이다. 코에 걸면 코걸이, 귀에 걸면 귀걸이 격이라고 보수적인 정통 학파들은 반대 의견을 제시할 수 있지만, 보험회사 경영을 바탕으로 한 절묘하고 정확한 단어의 선택이 그의 음악적 가치를 높여 준 셈이다. 패션에서도 블랙 라벨(black label)위에 한 단계 더 위의 명품 오트쿠튀르(haute couture)가 있듯이, 아이브스의 작품들은 마치 무일푼에서 벼락부자(from rags to riches)가 된 자수성가 사업가처럼 저급한 모방 수준에서 명작(masterpiece)으로 재탄생 했다. 그는 평범한 수준을 초월한 초월주의(transcendentalism)의 대표작곡가로 스스로를 승화 시킨 성공한 사업가이자 천재적 재능을 잘 발휘한 음악가이다. 조윤수 피아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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