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학이 인문학의 기초 학문이라면 수학은 자연과학의 기초 학문이요 시는 예술의 기초 장르라 할 수 있다. 1 더하기 1은 산술적으로 2인데, 논리적인 사고나 자연에서 관찰되는 현상에서는 1이 될 수 있고 아닐 수도 있다. 그래서 보통 사람들은 철학과 수학이 어렵다고 생각한다. 더군다나 시는 산술적으로 계산이 불가능하고 논리적인 사고로 설명할 수 없는 인간의 정신과 감정에 대한 영역을 표현하기 때문에 더욱 어렵다.

시에 대한 사람들의 오해도 시를 어렵게 하는데 한몫 한다.

"시(詩)는 절에서 스님이 쓰는 말씀이니 간결하고 선(禪)적이다"라고 가끔 시에 대한 오해의 말들을 필자는 듣는다. 그럴듯한 이야기다.

그런데 논리적으로 생각해도 합당하지 않다. 시경(詩經)은 기원전 11세기에서 기원전 6세기까지 불러지던 시들을 모아 470년 경에 편찬된 것이며, 불교가 중국에 전래된 것은 기원전 1세기경이라고 한다. 즉 시(詩)는 중국에서 불교가 전파되기 전부터 쓰였던 글자임을 알 수 있다.

절에 대한 역사를 살펴보면 더욱 명확하게 비합리적인 말임을 알 수 있다. 중국은 후한시대인 서기 67년 불교가 공인되었다고 한다. 이후 인도에서 섬마등과 축법란이란 승려가 흰 말에 불상과 불경을 싣고 낙양에 오자 당시 후한의 황제가 백마사(白馬寺)라는 정사를 지어 그들을 머물게 했다고 한다. 이 백마사가 중국 최초의 절이라고 한다. 그럼 왜 말씀 언(言)에 절 사(寺)를 붙여 시(詩)라는 뜻이 되었을까 하는 의문이 남는다.

한나라 때 인도의 승려들이나 외국 사신들이 중국을 방문하면 그들에게 숙식을 제공하기 위해 홍로시(鴻盧寺)라는 관청에 머물게 하였다고 한다. 이후 승려들이 머무는 곳과 관청을 구별하기 위해 시(寺)를 사(寺)로 구분하여 불렀다고 한다. 그러니까 시(寺)는 원래 관청이라는 뜻이었다.

지금까지의 이야기를 종합해 보면 "시(詩)는 관청에서 쓰는 말씀으로 은유적 수사이다"라고 할 수 있다. 이 표현도 무언가가 부족하다. 이래저래 어려운 시 이야기를 시작해 결론이 나지 않는다.

선인의 말씀을 빌려와 그 빈자리를 대신하고자 한다. `상서`에 "시는 뜻을 말하고, 노래는 말을 길게 읊는 것"이라는 순(舜) 임금의 말씀이 있다. 공자는 `시경`에 있는 관저 시에 대해 "즐거우면서도 음란하지 않고, 슬프면서도 마음을 상하지 않는다"라고 논평했다. 소동파는 "시는 글로 쓴 그림이다"라고 읊었다. 박종빈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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