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 자크 피슈테르는 국내에선 그다지 알려지지 않은 작가다. 역사학자인 피슈테르는 66살이 된 1993년에야 첫 소설 `별쇄본(책의 일부분을 뽑아 찍은 인쇄물)`을 냈고 이후 창작 활동도 뜸하기 때문이다. 국내에는 `표절`과 `편집된 죽음`으로 출판됐고 미국판은 `출판 살인`이란 타이틀을 달았다.

출판계에 몸담고 있는 주인공 `나`는 유명 작가인 니콜라 파브리와 어린시절부터 알고 지낸 친구다. 전쟁영웅에서 외교관으로 또 작가로 성공가도를 달리는 니콜라를 보면서 자신이 니콜라보다 더 뛰어난 작가적 재능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하는 `나`의 마음에는 시기심이 자리잡는다. `나`는 니콜라가 가장 영광스러운 순간을 복수의 시간으로 잡는다. 니콜라의 삶을 속속들이 알고 있기에 그의 새로운 소설 `사랑해야 한다`가 마치 예전에 발표됐던 소설인 듯 가짜 증거를 곳곳에 만들어 둔다. 니콜라가 공쿠르상을 받는 순간 그의 소설이 표절이라는 기사가 나오고 한 헌책방에서는 `사랑해야 한다`을 꼭 닮은 `사랑의 의무`란 책이 발견된다. 니콜라는 자신의 어린시절 기억을 토대로 쓴 소설이 표절일 리 없다고 자위하며 재기를 꿈꾸지만 집안 서재를 정리하다 6000권이 넘는 자신의 장서 중 `사랑의 의무`를 발견하고 상심해 자살한다. 피슈테르는 이 작품에서 처녀작답지 않은 탄탄한 스토리와 긴장감 넘치는 심리묘사로 1994년 범죄문학 대상을 받았다.

니콜라가 진실을 알았다 하더라도 순탄치 않은 삶이었으리라. 사실이 아니더라도 온 세상이 던지는 비난의 시선을 감당하기는 어려운 일이다. 타인의 삶을 조작하는 건 무서운 범죄다. 과학기술의 발달은 항상 빛과 그림자를 동시에 드리운다. 정보를 만들고 유통하기가 쉬워지면서 거짓이 진실을 가리는 일도 흔해졌다. 한 아이돌 가수의 합성 사진이 유포된 후 인공지능 기술로 인물을 합성해 만든 영상 딥페이크(deepfake)가 화제가 되고 있다. 대부분 연예인 등 유명인사들이 대상이지만 언제 일반인으로 바뀔 지 모른다. 과거에는 한눈에 알아볼 수 있도록 조악하게 편집됐지만 디지털 기술과 인공지능의 발전으로 하루가 다르게 정교해지고 있다. 단순한 패러디물이라도 초상권 문제가 있지만 야동까지 만들어내 개인의 삶을 위협하고 있다. 소설 속 `나`는 니콜라의 죽음 후에도 영광을 누리진 못했다. 뒤틀린 욕망은 행복을 가져다 주지 않는다. 이용민 취재1부 차장

<저작권자ⓒ대전일보사. 무단전재-재배포 금지>

저작권자 © 대전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