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호사칼럼]

김지현 대전대 간호학과 교수.
김지현 대전대 간호학과 교수.
최근 서울의 한 종합병원에서 신입 간호사가 투신한 사건을 둘러싸고, 간호사들의 `태움` 문화에 대한 비판이 들불처럼 번지고 있다. 태움이란 `재가 될 때까지 태운다`는 뜻으로 선배 간호사가 신입간호사를 괴롭히며 가르치는 것을 뜻하는 은어이다. `태움이 없는 병원은 없다`는 기사가 보도될 정도로 태움 문화는 간호계의 고질적이고 보편적인 문화로 인식되고 있으며 이를 해결하기 위한 간호계의 자정적인 노력이 요구되고 있다. 이에 대한간호협회는 간호사 태움 문화에 대한 근본적인 대책을 마련하기 위해 `간호조직체계 혁신위원회` 구성하고 운영에 들어갔다.

그러나 현실은 참담하다. 지난달 20일 발표된 `간호사 인권침해 실태조사`에서도 40.9%가 지난 1년 동안 직장에서 괴롭힘을 당한 적이 있다고 답했으며, 70% 정도가 인권침해를 당한 적이 있다고 답했다. 이러한 악습의 고리를 끊지 못하는 원인에는 교육이라는 명목아래 폭력을 일삼고 이를 묵인하는 간호계의 조직문화와 더불어 살인적인 근무 환경도 태움의 원인으로 지목되고 있다. 신입간호사가 병동에 배정되게 되면 교육을 담당할 경력간호사가 지정되며, 신입 간호사와 경력 간호사는 짝을 이뤄 실무교육을 하게 된다.

다시 말해 경력 간호사는 교육 기간 동안 신입간호사에게 자신이 알고 있는 전부를 가르쳐야 하며, 신입 간호사가 교육 후 온전히 독립할 수 있도록 교육해야하는 책임을 지게 되는 것이다. 국내 신입 간호사의 실무교육기간은 병원마다 다소 차이가 있을 수 있으나 대개 2-3개월에 불과하다. 1년 정도인 외국의 신입간호사 교육 기간에 비하면 턱없이 부족할 뿐만아니라 교육기간에도 이전과 동일한 수의 환자를 간호해야 한다.

간호사 1인당 담당하는 환자 수 또한 미국의 5.4명과 일본의 7명에 비해 현저히 많은 25-40명에 이른다. 이같은 살인적인 환경 속에서 간호사들은 서로를 가르치고 배우며 환자를 간호하고 있다. 가르치는 경력 간호사도 가르침을 받는 신입 간호사도 뼈 속까지 타들어가며 재가 될 때까지 태워지고 있는 것이다. 교육이라는 명목아래 이뤄지는 폭력과 학대는 반드시 근절돼야 하며 처벌받아야 하는 범죄이다. 그러나 이러한 태움 문화를 근절시키기 위해서는 간호계의 각성만으로는 부족하다. 의료계 전체의 자정 노력과 정부의 정책적 지원이 필요하다.

간호사 1인당 환자 수 법제화 등을 통한 간호 인력의 보충과 안정적 교육 및 조직 문화 개선을 위한 재정적·제도적 지원이 필요하다. 간호사들의 건강한 조직 문화를 정착시키는 것은 간호사 뿐만아니라 국민 전체의 건강을 지키는 첫걸음이 될 수 있다. 김지현 대전대 간호학과 교수

<저작권자ⓒ대전일보사. 무단전재-재배포 금지>

저작권자 © 대전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