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리 수술 후 오늘 퇴원하시는 어르신의 부인께서 외래 진료실로 찾아오셨다. "무슨 일이세요?"라고 물어보니 "그동안 할아버지 허리 수술도 잘해주고 고마웠어요. 그런데 내 무릎이 너무 아파 진료보러 왔어요. 약 좀 좋은 것 주세요."

연세가 많으셨지만 환자분이 입원에 계시는 동안 늘 병상 옆에서 간호하시고 늘 웃으시던 부인이시기에 약간 의외였다. 걸음걸이가 약간 불편해 보이기는 했지만 고령이시라 관절염 정도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으나 워낙 쾌활하시고 병실 분위기를 밝게 해주시는 분이셨다. 환자분이 화를 내시더라도 늘 웃으시면서 병간호를 하시는 모습에서 그리 심한 무릎 통증을 발견하지는 못하였다. 영상 검사를 해보니 골다공증도 심하시고 허리와 무릎에 심한 척추협착과 퇴행성 관절염 소견이 보였다. 검사만으로도 심한 통증으로 고생하셨을 것 같아 다시 물어보았다

할머니 지금까지 무슨 치료 받으셨어요?라고 묻자 할머니는 남편이 너무 허리로 고생하고 걷지도 못해 내가 아프다는 소리도 못했고 그냥 약이나 먹으면서 견디시었다고 하신다.

오늘 퇴원하시는 남편 분은 우리병원에 오시기 전에 다른 병원에서 수술 뿐만 아니라 많은 치료를 하셨던 분이신데 부인은 거의 치료를 받지 않으셨던 모양이다.

왠지 모르게 나의 마음에 작은 감동의 물결이 치는 것 같았다.

자식들도 타지에 있어 할아버지의 불편함을 모두 혼자서 돌보시고, 거의 2주간 불편한 환자보호자 침대에서 주무시고 병간호를 하셨으니 통증이 더 심해진 것은 당연한 일이다. 젊은 사람들도 병간호를 며칠만 하면 힘들어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지 않은가?

젊은이들의 사랑을 풋풋한 사랑이라고 표현한다면 이들 노인 부부의 이러한 사랑은 무엇이라 할 수 있을까? 정든 사랑이라고 표현하면 어떨까? 뗄레 뗄수 없는 완벽한 사랑, 내공이 쌓인 사랑이 아닐까? 헌신이라고하면 조금은 슬픈 생각이 든다.

집으로 퇴원하시면 아직은 불편하신 남편의 뒷바라지와 식사 준비 등으로 또 많은 일을 하셔야할 텐데 걱정이든다.

자식을 낳고, 교육시키고, 가정을 지키며 남편을 내조하신 어르신이 이제는 조금은 편히 쉬시고 요사이 그리 흔한 해외여행도 다니셔야할텐데 지금까지 고생하시는 모습을 보니 내가 수년전 어느 신문에 기고한 "뼈아픈 여자의 일생 " 이라는 글이 생각났다.

얼마 전 장애가 심하였던 유명한 과학자가 세상을 떠났을 때도 그 부인과의 사랑 얘기가 다시 회자되기도 하였다. 장애를 극복하고 자신의 천재적 재능을 인류역사에 남길수 있던 것도 그 아내의 사랑이 없었다면 가능하였을까?

어제 막을 내린 장애올림픽에서 우리나라 최초 금메달을 선사한 선수의 부모님과 국적이 다르지만 늘 그를 위해 조리사 자격증까지 따며 내조한 작은 체구를 가진 아내분의 헌신적 내조 이야기가 우리에게 감동을 준다.

최근 사회를 시끄럽게하는 성폭행 문제, 이혼율이 점점 증가하여 아시아 국가중 1위(?)라는 씁쓸한 기사, 최근 우리 지역에서 발생한 부부간의 참담한 사건 등의 근본적 해결 방법은 무엇일까? 헌신적이지 못하고 일종의 장난 같은 로두스(Lodus)적 사랑의 방식에서 탈피하기 위하여는 오늘 아침에 뵌 할머니의 모습, 그리고 장애 속에서도 멋진 스포츠를 즐기는 올림픽 출전 선수들과 그 옆에서 메달을 못 딴 아들을 오히려 위로해주고 안아주시는 가족의 모습을 보며 새삼 진정한 사랑이 우리에게 얼마나 필요하고 절실한가를 느껴야한다.

지금 시기는 종교계에서 회개와 기도, 절제와 금식, 깊은 명상과 경건의 생활을 강조하는 사순절 시기이다. 종교를 떠나 가족들과 주위사람들을 위하여 자신을 희생하신 분의 모습을 되새겨봄으로써 잠시만이라도 스스로를 절제하고 우리 주위의 가족, 친구, 그리고 나보다 힘든 분들을 생각하는 의미있는 시간이었으 면한다. 어느 책에서 "나이가 들어도 사랑은 막을 수는 없다. 하지만 사랑은 노화를 어느 정도 막을 수 있다"는 문구를 본적이 있다.

몸이 아파봐야 가족의 소중함을 알 수 있다는 말이 있듯이 우리 몸이 노화되어 허리가 아프고 무릎이 아플 때 가장 소중한 치료자는 의사가 아니라 가족인 듯 싶다.

오후 수술이 끝나고 외래진료를 시작하니 이번에는 오늘 퇴원하시는 그 할아버지가 오셔서 나에게 작은 목소리로 말을 건네신다.

"우리 할망구가 나 때문에 고생많아. 그리고 무릎이 심하게 아파. 그러니 다음번부터는 우리 마누라 좀 꼭 고쳐줘."

두 분 어르신의 모습에서 이 시대 `최고의 사랑`을 배운 하루였다. 양준영 대전베스트정형외과병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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