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본주의에서 돈은 필수 불가결한 요소다. 여러 사람이 모여 사회 생활을 하려면 거의 모든 분야에서 돈을 이용한 거래가 이뤄져야 한다. 사회에 돈이 원활하게 공급되지 않거나 적절하게 순환되지 않으면 필요한 거래 자체가 힘들어지고 경제 성장이 정체된다. 실제로 사용되는 돈은 화폐라는 형태로 존재하며, 화폐에 표시된 숫자는 화폐로 바꿀 수 있는 가치의 양을 나타낸다. 그런데 시중에 유통되는 화폐는 그 자체로서는 거의 가치가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오늘날 자본주의에서 돈은 신용화폐에 기초한다. 정부가 지정한 법정화폐로만 세금을 받겠다고 하고 법에 의해 강제된 신뢰에 바탕을 둔다. 정부는 나중에 세금을 걷어서 갚겠다는 약속을 하고 발행한 국채의 크기만큼만 돈을 중앙은행을 통해 발행한다. 국채가 만기되면 정부는 국민에게 세금을 걷어 갚는다. 그러므로 돈은 정부가 국민에게 세금을 걷어서 갚겠다고 약속한 빚의 증서가 되는 셈이다. 각국 중앙은행의 대차대조표에는 발행한 화폐가 부채로, 정부로부터 받은 국채는 수익으로 기록된다. 이렇게 된 것은 인류의 돈에 대한 수많은 경험에 의해 국가만이 부채를 자유롭게 해결할 수 있는 권한을 갖게 되었기 때문이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최근 많은 사람들이 빠져있는 가상화폐(cryptocurrency)는 정부가 인정한 부채를 해결할 수 있는 화폐는 아니다. 각국마다 서로 다른 화폐를 사용하지만 그 나라가 처한 경제 상황에 따라 화폐가 제 역할을 못할 수도 있다. 예를 들어, 최근 석유부국인 베네수엘라가 국가파산에 이르렀으며 국민들은 하이퍼 인플레이션에 시달리고 있다. 베네수엘라 정부는 그동안 사용하던 자국 화폐가 거의 쓸모가 없어지자 자국산 원유에 기반한 `페트로`라는 가상화폐를 지난달에 발행했다. 가상화폐로는 세계최초로 정부가 발행한 때문인지 아직까지는 순조롭게 판매된다고 한다. 그러나 페트로를 산 구매자들이 미래에 환전을 요구할 때 상환해줄 충분한 양의 외환을 가질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문제는 국제 거래에서 기축통화인 달러나 유로를 사용하는 미국과 유럽연합이 베네수엘라에 경제 제재를 가하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나라는 자원부족 때문에 경제규모 대비 대외 무역의존도가 95% 정도로 높다. 우리나라보다 무역의존도가 높은 나라는 홍콩, 벨기에, 말레이시아, 네덜란드 등 인구와 면적이 상대적으로 작은 나라들이다. 우리나라는 무역에 의해 나라 밖에서 경제적 이득을 취해야만 한다. 현재 국제경제 질서에서 기축통화에 해당하는 달러, 유로, 엔화를 합친 비중이 75% 정도인 점을 고려하면 한반도의 지정학적 불안 요인이 우리 경제에 심각한 영향을 미칠 것이라는 점은 불 보듯 뻔하다. `코리아 디스카운트`의 이유다.

우리나라는 실물과 자본의 대외의존도가 높아 자본 자유화가 잘 진행되었고 변동성 또한 매우 높다. 자본 자유화가 본격화되기 이전에는 수출입 등 실물 거래와 관련된 달러의 수요와 공급이 외환 시장 거래의 대부분이어서 수출입에 의한 경상 수지가 가장 중요한 요소였다. 최근에는 자본 거래가 더 큰 비중을 차지하여 다른 나라의 주식이나 국공채 등을 사고팔기 위한 외환의 수요와 공급이 많아졌다. 자본 이동에서 중요한 요인 중 하나는 국내·외의 실질 금리 차이다. 최근 미국이 연속해서 기준금리를 올리려 하면서 우리나라와 기준금리가 역전될 수 있다고 한다. 그러나 과거와는 달리 우리 경제에 아주 큰 충격은 없을 것으로 전문가들은 예상한다.

우리나라의 가상화폐 거래 시장 규모는 세계 3위이다. 여기에 우리나라의 자본 자유화도 한 몫 했을것이다. 많은 전문가들이 `블록체인`이라는 신기술이 발전하고 실물 경제와 결합하면서 지금보다 더 나은 경제적 수단으로 발전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우리나라의 경우 과거와는 달리 자본 시장이 크게 발달해 가상화폐 시장의 변동성을 어느 정도 수용할 수 있다고 생각된다. 최근 미국의 글로벌 투자은행인 골드만삭스가 가상화폐 거래소인 폴로닉스(Poloniex)를 4억 달러(약 4300억 원)에 인수했다. 가상화폐에 대한 사회적 관심을 계속해서 유지하면서도 부작용을 최소화할 연구개발과 제도 정비를 위한 정책적 대응이 필요한 때다. 안치득 ETRI 방송·미디어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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