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는 지나치게 많은 것들이 서울과 중앙에 집중돼 있다. 나라 전체 인구의 2분의 1, 경제력의 3분의 2, 그 밖에 정치, 행정, 문화, 교육 등 거의 모든 영역에 걸친 핵심기능과 자원이 서울을 중심으로 한 수도권에 몰려있다. 그러다보니 더 나은 교육을 받고 더 나은 일자리를 찾기 위해 지방 사람들은 하나둘씩 서울로 향한다. 사람과 함께 돈도 권력도 전부 서울로 모이게 된다.

과거 분배보다 성장에 집중하던 시절에는 이른 바 `낙수효과` 논리를 명분으로 이 같은 현상이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지기도 했다. 컵을 층층이 쌓고 위에서 물을 부으면 결국 아래 있는 컵까지 물이 차게 되듯, 수도권을 우선적으로 지원해 국가경제가 성장하면 그 혜택이 지방에까지 돌아간다는 논리이다.

하지만 저성장 시대에 접어들면서 낙수효과는 점점 미미해지고, 이로 인한 폐해만 더욱 커졌다. 수도권은 마치 블랙홀처럼 모든 것을 빨아들이며 지나치게 비대해진 반면, 지방은 점점 고사위기로 치닫고 있다. 사람으로 치면 수도권은 고도비만, 지방은 영양실조에 시달리고 있는 것이다.

뭐든지 그렇듯이 과하면 과한대로 모자라면 모자란 대로 부작용이 생기는 법이다. 수도권은 비정상적인 과밀화로 인해 높은 집값, 극심한 교통체증, 대기오염과 같은 많은 문제를 안고 있으며, 지방은 산업이 쇠퇴하고 청장년 인구가 유출되면서 자립기반이 크게 약화되고 있다. 그러다 보니 수도권과 지방 그 어느 쪽도 삶의 질이 높지 못한 상황이 된 것이다.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고, 어느 지역에 살든 주민의 삶의 질이 보장될 수 있도록 하는 길은 지방분권의 실현에 있다.

사실 우리가 직면하고 있는 문제 가운데 생각보다 많은 것들이 중앙집권적인 시스템과 관련이 있다. 대전시가 역점을 두고 추진하고 있는 과제인 청년문제를 한 예로 들어보자.

지방의 많은 청년들이 고향을 등진 채 진학 또는 취업 위해 서울로 향한다. 소위 명문대의 대부분이 서울에 있으며, 국내 100대 대기업의 본사 가운데 86곳이 수도권에 위치해 있기 때문이다. 문제는 주거비와 생활비 부담으로 인해 상경한 청년들은 궁핍한 생활을 할 수 밖에 없다는 사실이다. `스튜던트 푸어`라는 신조어까지 생겨날 정도이다. 또한 지방에서 이들을 지원하는 가족들의 생활도 점점 피폐해진다.

만약 지방에 충분한 지원이 이루어져 산업기반이 잘 다져지고 좋은 일자리가 있다면, 지방의 인재와 재원이 역외로 유출되는 일은 훨씬 줄어들 것이다. 그로 인해 생겨나는 부작용도 줄어들게 되면서 지역 주민들의 삶의 질은 한층 높아질 것이다.

보건 의료 분야 또한 지방분권이 시급하다. 우리는 지난 몇 년간 메르스, AI, 구제역 등으로 인해 홍역을 치렀다. 우리가 잘 알다시피 질병에 대한 방역은 촌각을 다투는 일이다. 필요하다면 초기에 과잉대응을 해서라도 사태를 빠르게 진정시켜야 한다. 하지만 현장 중심의 신속하고 탄력적인 대응이 핵심인 분야조차도 중앙의 통제를 받다 보니 번번이 황금 시간을 사수하지 못하고 말았던 것이다.

건강과 안전이야말로 시민의 삶의 질과 직결되는 분야이며 이에 대한 사각지대가 생겨서는 안된다. 그런 점에서 국가적 차원의 관리도 중요하지만, 지방에 권한을 위임할 때 주민의 요구와 눈높이에 맞는 질 좋은 행정서비스 제공이 가능할 것이다.

현대 사회는 엄청나게 크고 복잡해졌다. 변화의 속도 또한 과거 어느 때보다 빠르며, 시민들의 요구 사항도 매우 다양해지고 있다. 이는 중앙정부가 결정하고, 지방이 집행하는 방식으로는 더 이상 버티기가 힘들어졌음을 의미한다. 비용을 줄이면서 시민의 삶의 질을 극대화할 수 있는 길은 지방분권에 있다. 지방분권의 시대가 하루 빨리 열리기를 기대해 본다. 신상열 대전시 자치행정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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