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한 공중파의 `한국기행 소확행 하신가요`라는 프로그램을 흥미롭게 봤다. 5부작이었는데 귀농해 사는 부부의 새롭게 쓰는 신혼일기, 한옥을 고치고 만드는데서 행복을 느끼는 부부이야기 등 주변의 자연과 이웃과 함께 살면서 작은 일을 통해서 행복을 느끼며 살아가는 이야기였다. 이 프로그램을 보며 대리 만족과 함께 언젠가는 나도 저런 자유로운 생활을 하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리고 나에게는 생소한 제목 소확행이란 단어가 매우 궁금해지기 시작했다. 그런데 알고 보니 소확행이란 일상에서 느낄 수 있는 작지만 확실하게 실현 가능한 행복이라는 뜻으로 무라카미 하루키가 쓴 수필집 `랑겔한스섬의 오후`에 단어가 나왔다고 한다. 무라카미 하루키는 행복을 갓 구운 빵을 손으로 찢어 먹는 것, 서랍 안에 반듯하게 접어 넣은 속옷이 잔뜩 쌓여 있는 것, 새로 산 정결한 면 냄새가 풍기는 하얀 셔츠를 머리에서부터 뒤집어쓸 때의 기분이라 표현했다고 한다. 그리고 소확행이 우리들에게 널리 알려지게 된 계기는 김난도 교수의 책 트렌드코리아 2018의 영향이 큰데, 김 교수는 올해 우리나라 10대 트렌드 중에 첫 번째로 소확행을 꼽았다. 그는 우리 젊은이들에게 내일이 오늘보다 나아질 것이란 희망이 없어졌다고 생각하는 것이 최근의 가장 큰 트렌드이고 그래서 젊은이들은 작지만 확실한 지금의 행복을 추구하고 그런 곳에 소비를 한다고 했다.

그동안 현대인들은 가능하면 많은 돈을 벌고, 남들에게 보란 듯이 과시하면서 호사스럽게 살아왔다. 삶이란 승자만이 존경받는 승부요, 경쟁에서 이기는 것이 행복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이제는 그런 경향에서 점차 벗어나고 있다니 한편으로 다행이라는 생각이 든다. 우리나라도 생활수준이 향상되면서 인생의 목적이 경쟁에서 살아남기에서 행복하기로 바뀌어 가고 있는 것이다. 특히 젊은이들은 이제는 남들과의 지나친 경쟁보다는 자신만의 삶의 가치를 추구하고 있다. 그들은 내일의 보장을 위해서 오늘의 행복을 유보하거나 희생을 원하지 않는다고 한다. 미래보다는 현재에서 그리고 크고 특별함보다는 작고 평범한 일상의 행복을 바란다. 그들은 일과 삶의 균형을 추구하면서 적절한 여가를 갖고, 자신만의 작은 행복을 찾는다.

작가 김혜령은 `불안이라는 위안`이라는 책에서 요즘에는 보통의 기준이 너무 높아져서 평범한 삶은 초라하다는 생각이 너무 만연해 있다고 주장한다. 그리고 행복학자들의 연구에 의하면 행복은 긍정적인 정서의 강렬함이 아니라 빈도이고, 강렬하게 느끼는 것보다 여러 번 자주 느끼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한다. 이를 종합해보면 우리의 삶에서 일상의 행복감은 매우 중요하고, 일상의 소소한 즐거움과 기쁨을 자주 느끼는 것이 행복의 비결이다. 값비싼 음식, 외국여행, 화려한 명품보다는 조용히 자연과 이웃과의 관계에서 찾을 수 있는 정과 같은 소박한 기쁨을 즐길 줄 아는 것이 진정한 행복으로 가는 길이라 생각하는 이들이 많아지고 있다. 또한 일상의 행복은 나를 둘러싸고 있는 주변의 다양한 것들에게 긍정적인 관심을 가질 때 온다고 한다. 20세기 최고의 지성, 버트런드 러셀은 근본적인 행복은 우리 주변의 인간과 사물에 대한 따뜻한 관심과 관계에서 나온다고 말한다. 그래서 행복의 비결은 폭 넓은 관심을 가지고, 관심을 끄는 사물이나 사람들에게 되도록 따뜻한 반응을 보이는 것이라고 한다. 관심 분야가 많은 사람일수록, 행복해질 기회는 그만큼 많아지고, 불행의 여신의 손에 휘둘릴 기회는 그만큼 줄어든다. 한 가지를 잃게 된다고 해도 다른 것에 의지할 수 있기 때문이다. 세상이 보여주는 다양한 소소한 구경거리에 흥미를 갖지 못하는 사람은 삶이 베푸는 여러 특권 중의 하나를 포기하는 셈이다. 우리는 주변의 수많은 소소한 관계에서 끊임없이 샘솟는 행복과 기쁨을 얻을 수 있다. 반대로 말하면 커다란 한두 가지에만 인생을 허비하는 사람은 행복할 기회가 그만큼 줄어든다. 그리고 내일의 행복을 위해서 지금을 희생하는 우를 범하지 말아야 한다.

몇 년 전 멘토, 멘티 프로그램에서 의과대 여학생을 만났는데 학생은 명량하고 활달했으며 주변과 관계 형성에 적극적이었다. 우수한 성적으로 학교를 졸업하고 의사가 돼 서도 인턴 과정을 잘 치렀다. 그런데 인턴을 마치자마자 레지던트과정에 들어가지 않고 일 년 동안 쉬면서 혼자서 남미로 배낭여행을 갔다. 나에게는 신선한 충격이었다. 일 년간 여행을 떠나는 것은 은퇴 이후나 가능한 일이라고 여기고 있었기 때문이다. 나의 젊은 시절에는 서둘러 레지던트를 끝내는 것이 옳은 일이라고 생각했다. 돌이켜보면 우리 기성세대는 은퇴 이후를 대비한다면서 인생의 황금기를 희생하는 잘못을 범했는지도 모른다. 오늘날 우리 젊은이들은 자신의 미래를 위해 열심히 살면서도, 젊은 시절을 아깝게 버리지 않고 즐길 줄 알게 됐다. 그래서 우리나라도 이제부터 점점 더 행복한 나라가 되어갔으면 좋겠다. 이승훈 을지대의료원장

<저작권자ⓒ대전일보사. 무단전재-재배포 금지>

저작권자 © 대전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