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희정 전 충남지사의 성폭행 파문이 터지면서 도민은 물론 전국민이 경악했다. 소통과 인권을 강조해온 그의 얼굴 뒤에는 독재, 제왕적 권력이라는 이중성이 있었다. 차기 대권 후보였던 안 전 지사는 지난 5일 공보비서를 성폭행했다는 의혹이 제기되자 6일 도지사직을 사퇴하고 잠적했다. 성폭행 의혹에 대한 입장을 표명하려 한 기자회견도 2시간 전 문자메시지를 통해 돌연 취소했다. 소통을 강조하던 그의 철학은 찾아볼 수 없었다.

검찰은 13-14일 충남도청 도지사 집무실, 비서실, 도지사 관사 등을 압수수색했다. 도청 개청 이래 처음이라고 한다. 이번 사태로 도민들은 물론 도청 직원들은 충격과 배신감, 허무함 등 상처를 입었고, 충청대망론에 대한 기대감도 무너졌다. 그동안 안 전 지사의 기조에 맞춰 업무를 추진하던 직원들은 허탈감에 빠졌고, 심지어 눈물을 흘리는 이들도 있었다.

소통을 내세우며, 인권 가치 실현 및 양성평등 정책을 추진하던 안 전 지사의 행보와 상충된다는 점에서 충격이 큰 것으로 보인다. 더욱이 40대 젊은 나이에 도지사에 당선된 안 전 지사는 반듯하고 긍정적인 이미지를 구축하며 차기 대권 주자로 부상했다. 민선 5·6기 도정을 이끌면서 행정혁신, 자치분권 등 거대 담론을 던졌다. 도정 관련 행사 중 그의 발언을 보면 "세계에서 일 잘하는 충남도"라거나, "지속가능 발전 목표에 대한 세계 표준을 만들자" 등 도정 중심이 아닌 국정 중심으로 말했다.

전문가들은 안 전 지사의 성폭행 의혹 사태에 대해 불통과 제왕적 리더십이라는 구조적인 문제점에서 기인했다고 제언한다. 밖으로 소통을 강조했지만 안으로는 제왕적 권력을 휘두르며 소통하지 않았다. 도정보다 대외활동에만 주력하는 것 아니냐는 언론과 도의회 등의 수많은 지적에는 귀를 닫았다. 언론 대응방식도 폐쇄적이었다. 개인 일정을 공유하지 않고 휴대전화번호를 아는 기자들이 없을 정도였다. 그의 제왕적 권력을 견제하지 못했고, 제동을 걸지 못했다는 점이 아쉽다.

이번 사태를 반복하지 않기 위해선 시민단체나 의회로 구성된 외부 견제 장치 등 제도적 시스템을 마련해야 한다. 도백(道伯)은 도의 행정사무를 총괄하는 최고책임자인 도지사를 말한다. 도백의 자리에 앉으려면, 도덕성의 무게를 견뎌야 하지 않을까. 김정원 충남취재본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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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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