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대통령의 지시로 국민헌법자문특별위원회(이하 자문특위)가 마련한 개헌 자문안이 현 정부의 주요 정책기조인 `지방분권`을 제대로 담아내지 못했다는 지적이다.

대통령직속 자문기구가 대통령의 공약사항이었음에도 행정수도에 이어 지방분권까지 소홀히 다뤘다는 여론이 커지면서 내용은 없이 시기만 지켜려 하는 것 아니냐는 비판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18일 자문특위와 지방분권관련 유관단체 등에 따르면 자문특위가 청와대에 보고한 자문 안에는 `대한민국은 지방분권을 지향한다`는 선언이 담겨있으나, 이는 문 대통령이 새 정부 출범 전후 강력한 지방분권형 개헌을 약속하며 `연방제 수준의 지방정부`를 지향한다고 선언했던 것에 비해 크게 후퇴한 수준이라는 평가다.

구체적인 내용을 살펴보면 자문안에는 총강 등에 중앙·지방 정부간 사무배분 시 지방정부가 1차적 권한을 갖고, 중앙정부가 나머지 부족한 부분을 채워주는 `보충성의 원칙` 등이 담겼다는 것. 자치입법권과 자치재정권 등 핵심쟁점에 대해서는 현재보다 진일보한 1안과 현행과 비슷한 수준의 2안이 복수안으로 제시됐으며, 구체적인 사항은 법률에서 정하도록 한 것으로 파악됐다.

문제는 1, 2안 모두 연방제에 준하는 지방분권이라는 당초 기대치와는 간극이 크다는 점이다. 자치입법권의 경우, 국민 기본권 제한의 법률유보 조항(헌법 제37조 2항)을 자치법률로까지 완화하는 것이 1안이고, 2안은 `법령의 범위 안에서` 자치 규정을 제정할 수 있도록 한 조항을 `법률에 위반되지 않는 범위 내에서`로 개정하는 내용이 담긴 것으로 전해졌다.

이에 대해 지방분권 전문가들은 1, 2안 모두 법률 우위의 원칙을 확인한 것에 불과하며 특히 중앙정부가 법률의 많은 사항을 대통령령·총리령·부령에 위임하고 있다는 점을 감안하면 2안은 지금 체계와 달라질 게 없다는 게 중론이다.

지방분권개헌 국민회의 상임대표인 이기우 인하대 법학전문대 교수는 "자문특위의 자문안은 외교, 국방, 금융, 통화 등 국가존립과 전국적 통일성을 요하는 부분은 중앙정부가 입법권을 갖고, 나머지는 중앙정부와 지방정부가 각각 입법권을 갖도록 한 국회 헌정특위 자문위 안에도 못 미치는 수준"이라고 평가했다.

또 자문안에는 자치재정권과 관련, 지자체가 재량에 맞게 자율적으로 과세하도록 `자치세`라는 명칭을 헌법에 담는 1안과 지방정부가 조례 형식으로 과세할 수 있도록 법률에 위임하는 2안이 복수로 제시된 것으로 전해졌다. 1안은 지방정부의 과세권한을 강화하지만 2안은 종전의 방식을 그대로 유지하는 것으로 청와대는 조세법률주의를 손보지 않는다는 방침이어서 기존 2안이 채택될 가능성이 높다는 전언이다.

이처럼 자문안에 담긴 지방분권에 대한 선언이 기대에 못 미치고, 내용도 부실한 것으로 전해지자 자문특위가 대통령의 공약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한 것 아니냐는 비판이 커지고 있다.

특히 문 대통령이 `국민 동의`를 전제로 헌법에 행정수도 명시를 약속했음에도 제대로 된 국민동의 절차도 없이 수도조항을 법률로 위임하겠다고 제시한 데 이어 지방분권도 미흡했다는 지적이 쏟아지면서 전국적인 공분을 사는 형국이다.

지방분권관련 유관단체 관계자는 "대통령의 지시로 자문 안을 만들면서도 대통령의 공약을 등한 시 했다는 것 자체가 이해하기 힘들다"며 "이 같은 내용의 자문안이 대통령 안으로 확정된다면, 국민과의 약속 중 시기만 지키려할 뿐 내용은 모두 공약파기로 평가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서울=송충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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