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관세폭탄` 우려가 현실이 됐다. 트럼프 미 대통령이 모든 외국산 철강에 25%, 알루미늄에 10%의 관세를 매기는 행정명령에 서명했다. `국가 안보`를 내세워 수입 규제조치를 강행했다. "철강은 국가안보에 필수, 철강이 없으면 나라도 없다"는 게 트럼프의 논리다. 물론 한국도 대상에서 빠지지 않았다. 당초 한국과 중국 등 몇 나라를 꼭 집어 53%의 관세를 부과하려던 최악의 상황은 그나마 면했다. 주요 관세대상국들의 반발이 극심하다. 유럽(EU)과 중국은 보복관세를 부과하겠다며 벼르고 있다. 일촉즉발 세계무역전쟁의 폭풍전야다.

철강관세는 미국 내에서도 반대 여론이 적지 않다. 공화당은 물론 미국업계에서 조차 반반을 하고 있다. 관세부과를 비판해 온 게리 콘 백악관 국가경제위원회(NEC) 위원장이 사임했다. 폴 라이언 공화당 하원의장과 당 지도부도 반대 입장을 분명히 했다. 미국 철강·알루미늄 업계서도 부과대상을 중국으로 한정하라고 요구할 정도다. 그럼에도 트럼프가 고율관세를 강행한 것은 선거를 의식했다는 분석이다. 오는 11월 중간 선거를 겨냥해 지지율을 끌어올리기 위함이라는 것이다.

25%의 고율관세가 실행되면 한국산 철강제품이 직격탄을 맞는다. 국내업계의 지난해 대미 철강수출량은 354만 톤이다. 이중 40%에 달하는 140만 톤은 줄어들 것이란 관측이다. 현대경제연구원의 분석으로도 향후 3년간 국내 철강 생산 손실이 7조 2300억 원이나 된다. 1만 4000여 개의 국내 일자리도 사라질 것이라고 한다. 철강도 문제지만 타 제품까지 확산될까 더 걱정이다. 철강관세 조치는 한국산 세탁기와 태양광패널의 세이프가드 이후 나왔다. 앞으로 한국산 반도체나 자동차로 번지지 않는다는 보장을 하기가 어렵다. 트럼프가 재미를 봤다고 생각한다면 다음번에 꺼내 들 카드가 될 수 있다.

주목할 것은 "개별 국가에 대해 관세를 면제해 줄 수 있다"는 트럼프의 언급이다. `수출품이 미국의 안보를 위협하지 않을 것`이란 단서를 달았지만 협상의 여지가 있다는 의미다. 실제로 같은 대미 철강 수출국인 캐나다와 멕시코는 이번 조치에서 제외됐다. 북미자유협정(NAFTA) 재협상 대상국이라는 이유에서다. 한국도 한미FTA 재협상을 진행하고 있다. 같은 이유로 면제가 됐어야 마땅하다. 뒤늦게 호주도 대상에서 빠졌다. 맬컴 턴블 호주 총리가 트럼프와 통화를 하고 나서다. 이는 호주 정치, 경제인들이 미국의 상·하의원과 백악관 인사들을 만나 `혈맹`을 강조하며 협조를 구한 게 주효했다고 한다.

같은 맥락에서 케네스 커티스 前 골드만삭스 부회장의 조언은 깊이 새겨볼 만하다. "한국이 관세폭탄을 빗겨가려면 백악관 참모는 물론 연방정부와 주정부 관료, 기업 등 다방면으로 접촉해 설득해야 한다"는 것이다. "트럼프는 정치인이라서 모든 집단에서 압력을 받으면 마음을 바꿀 가능성이 커진다"는 설명이다. 무엇보다 트럼프의 마음을 돌리는 게 중요하다는 얘기인 셈이다.

가장 바람직한 건 한국이 철강관세 대상에서 빠지는 것이다. 호주와 상황이 다르긴 하지만 한국이라고 못할 이유는 없다. 누가 뭐래도 한국은 6·25이후 미국과 둘도 없는 혈맹관계를 유지해오고 있다. 미국으로부터 사들인 무기 비용만 해도 천문학적이다. 사실상 최대의 대미 무기수입국이다. 미국 방위산업계가 떠받들어야 할 중요한 고객이다. 더구나 남북정상회담을 앞둔 시점에서 미국의 관세부과는 한·미동맹의 약화로 비쳐질 수가 있다. 철강관세 대상국에서 한국이 제외돼야 할 이유가 되기에 충분하다. 이 같은 사실을 트럼프나 미 행정부에 적극 주장해야 한다. 호주가 했듯이 정계·경제계는 물론 외교통상·안보 채널까지 모두 가동해 총력전을 펼쳐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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