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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백] 복수초

2018-03-13기사 편집 2018-03-13 17:07: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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샛노란 꽃망울로 새봄을 알리는 전령사가 있다. 복과 장수를 기원하는 꽃, 복수초(福壽草)이다. 복수초는 2월 초 주변의 눈과 얼음을 녹이며 꽃을 피워 '얼음새꽃'으로도 불린다. 우리나라 숲 속 곳곳에 서식하며 제주도의 '세복수초', '개복수초', '복수초'가 자생 고유종으로 알려져 있다.

2018년 대한민국 봄은 '영원한 행복', '복을 많이 받고 오래 살라'는 꽃말의 복수초(福壽草)가 아닌 또 하나의 복수초가 강타하고 있다. 원수를 갚는 복수초(復讐草)이다. 미국의 온라인 공간에서 발아해 유럽을 거쳐 우리나라에 들어온 복수초로 한때 유력 대선주자였던 한 정치인은 며칠 종적을 감췄는가 하면 어느 사람은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복수초 위력에 밤잠을 설치는 이들이 한 둘이 아니다.

대한민국 정치 지형도까지 바꿔 놓고 있는 복수초는 사실 "네 오른빰을 때리거든 왼뺨도 내주어라"는 전혀 상반된 성경 경구만큼이나 유구한 꽃이다. 기원전 1750년 경 만들어진 함무라비 법전은 특정 범죄에 대한 동해보복법(同害報復法), 일명 "눈에는 눈, 이에는 이"로 복수를 정당화 했다. 하지만 복수는 그때도 지금처럼 공평하지 않았다.

스티븐 파인먼이 쓴 '복수의 심리학'에 따르면 함무라비 법전 시대도 상위계급인 바빌로니아인이 같은 계급 시민의 눈을 상하게 하면 자기 눈을 내놓아야 했지만 평민을 눈멀게 한 경우 60세겔만 내면 면죄부를 받았다. 의사가 부유한 환자를 죽이면 두 손을 잃었지만 피해자가 노예라면 벌금형으로 끝났다. 절도에 따른 복수도 피해자의 사회적 지위에 따라 달랐다. 상류층의 소, 양, 나귀, 돼지, 염소를 훔치면 해당 가축 가격의 서른 배를 물어야 했다. 주인이 평민이면 열배 변상으로 해결됐다. 벌금 낼 돈이 없는 가난한 도둑은 목숨을 내놓아야 했다. 복수의 '특권화'였다.

복수는 사회적 부정을 드러내고 바로잡는 순기능도 한다. 불평등한 억압 관계에서는 중요한 저항의 경로이다. '미투운동'으로 상징되는 복수초가 오늘날 한국사회에 더 만개되어야 할 이유이다. 잊지말아야 할 것은, "복수라는 램프의 요정이 일단 세상에 나오면 그 괴물을 다시 호리병 속에 넣기란 거의 불가능하다"는 점이다. 윤평호 천안아산취재본부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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