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사칼럼

정일영 십자약국 약사.
정일영 십자약국 약사.
약을 복용하면서 `약은 왜 먹을 때만 효과가 나나요`, `제약회사가 돈을 벌려고 그러나요`라는 등 불평하는 사람들이 있다. 하지만 밥을 먹었을 때만 배가 부르듯 약도 먹을 때만 효과가 나야 한다는 것이다. 약은 몸에서 일어나는 자연 현상의 방해물을 없애서 자연 현상이 잘 일어나게 하는 것이다. 따라서 약효가 나는 것도 자연의 법칙을 따라야 한다.

약효가 나타났다가 사라지는 것이 잘못된 것이 아니며, 약을 먹어도 약효가 없거나 약효가 계속 나타나는 것이 더 잘못된 것이다. 약을 먹고 약효가 있다면 제대로 일을 했다는 뜻이다. 기능이 정상화되면 건강도 회복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며 약효가 사라지지 않으면 몸에 이상이 생긴 것이다.

그 이유는 생물체와 무생물의 차이로 생각할 수 있다. 생물체와 무생물은 여러 가지가 다르지만, 신진대사는 생물체의 중요 특징 중 하나이다. 신진대사란 `묵은 것(陳)은 없어지고, 새 것(新)이 대신 생기는 일`을 말한다.

죽은 분자로 이뤄진 무생물은 낡으면 스스로 새로워질 수 없지만, 살아 있는 세포로 이뤄진 생물체에서는 신진대사가 끝없이 일어나 수명을 다한 세포가 사라지면 다른 세포가 새로 생긴다. 음식을 먹고 시간이 지나면 배가 고파 다시 밥을 먹어야 한다. 왜 그럴까. 음식을 먹은 뒤 소화 등 대사 과정을 거치며 영양분이 소모되면 배가 고프게 되며 음식을 또 먹게 된다. 이것을 신진대사의 관점으로는 이렇게 생각할 수 있다.

섭취한 음식물의 덕을 보는 세포는 식사할 때 그 영양분을 받아 기운을 낼 수 있다. 그런데 이 세포가 사라진 뒤 새로 생긴 세포는 영양분을 못 받아 기운이 없다. 그래서 신진대사가 활발한 청소년기에는 배도 금방 고파져서 간식을 자주 먹는다.

약도 마찬가지다. 약을 먹으면 몸 속 세포에서 약효를 낸다. 그런데 신진대사의 관점에서 보면 약을 먹었을 때 살아 있어 약효를 냈던 세포가 죽으면 약효도 사라진다. 그리고 그 뒤에 새로 생긴 세포도 약효를 내려면 약이 또 필요하다. 그래서 약을 또 이어서 먹어야 한다. 약을 먹을 때만 효과가 있다고 불평하지만, 약을 먹어도 효과가 없는 것이 더 문제가 될 수 있다. 잘못된 약을 먹었거나 심각한 병일 수 있기 때문이다. 약이 효과가 있다면 언젠가는 병이 나을 수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갑자기 의식을 잃은 사람에게 심폐소생술을 했을 때 의식을 찾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깨어나지 못하는 사람도 있다. 말할 것도 없이 깨어나는 사람이 당연히 좋은 것이다. 단 고혈압, 당뇨병, 신경통 등 만성질환에 약을 먹는 것은 완치가 목적이 아니고 몸이 정상 상태를 유지해 일상생활에 지장이 없이 지낼 수 있게 하려는 것이다. 이런 만성질환을 앓고 있을 때도 약으로 정상 상태가 유지된다면 그것으로도 삶의 질(quality of life)을 좋게 유지할 수 있다. 그래서 생활습관병이라고도 하는 만성질환은 생활습관을 고쳐야 몸을 정상 상태로 유지하기가 더 좋다.

약을 먹은 뒤 약효가 금방 떨어진다고 불평하는 사람의 경우에도 밥을 먹은 뒤 배가 고파지면 불평 한마디 없이 또 밥을 먹는다. 밥은 계속 먹으면서 약은 한 번만 먹으려는 것은 욕심이 아닐까. 약효가 아주 오래가는 약은 유전자에 변형을 일으켜 새로 생긴 세포에까지 그 영향이 계속 이어질 수 있다. 그런 약은 후손에까지 그런 이상을 넘겨주는 위험한 약일 수 있다. 몸에서 효과를 낸 뒤에 바로 사라지는 약이 사실은 안전하고 좋은 약이다. 정일영 십자약국 약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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