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원 김홍도의 서당이라는 그림을 보며 생각한다. 서당과 대학의 차이는 무엇일까? 단원의 그림에서는 우선 학생 수가 아주 적다. 야단 맞는 아이까지 9명이다. 나이 차이도 꽤 있어 보인다. 훈장 선생님은 아주 위엄 있어 보인다. 체격도 크고 회초리도 가지고 있다. 가르치는 권위도 있고 평가 또한 모두 선생님의 몫이다. 옛날에는 논어 맹자를 배웠다 한다. 즉 교재도 단출하고 변화가 없었다. 어쩌면 편한 면이 있다.

서당의 제도를 현재의 대학 교육과 비교해 보면 격세지감이란 말 그대로다. 선생님은 한분이 아니고 과목에 따라서 많은 분이 전문성을 가지고 가르치신다. 서당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동네 어른의 추천 혹은 집안 어른의 소개 등이 아마도 중요했다 생각된다. 그러나 요새 대학 입학은 그런 방법으로는 어림없다. 말 듣지 않으려면 아주 조심해야 하고 또 공명정대해야 함은 물론이다.

한국의 대학은 산업과 함께 거의 빛의 속도로 변화했다. 경공업에서 정부 주도의 중공업으로 반도체 산업으로 그리고 요새는 4차 산업혁명으로 발전됐듯이 대학도 이러한 사회적 요구에 맞게 혹은 앞서가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여 왔다.

그러나 과연 우리 사회가 가지고 있는 각종 문제, 인구 절벽, 새로운 좋은 일자리 만들기, 변화하는 국제 환경에서의 우월성 유지, 새로운 산업의 창출, 이런 면에서 잘 하고 있는지 의문이다. 이 의문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대학의 기본 의무, 특성을 잘 볼 필요가 있다. 진부한 이야기 일까? 잘 생각해 보면 우리는 대학의 기본에 대해 깊이 있게 긴 호흡으로 무게 있게 생각해 볼 여유가 없었다. 김홍도의 서원처럼 시간을 길게 써 볼 필요가 있을지 모른다.

대학은 말 그대로 크게 배우는 곳이다. 우선 배우는 방법은 서원과 많이 다를까? 놀랍게도 크게 변하지 않았다. 좋은 자료를 선택해 열심히 읽고 선생님의 가르침을 잘 소화해서 자신의 공부로 만드는 작업은 동일해 보인다. 요즘은 이 자료를 거의 무한정으로 시간에 관계없이 얻을 수 있는 인터넷이 있다. 당연히 이를 이용하는 교육 시스템이 돼야 한다. 그러나 교수들은 이 자료에 대한 의존도가 올라가는 것을 여러 가지 이유로 달가워하지 않는다. 인터넷 자료의 가치를 알 수 있는 방법이 별로 없다는 이유다. 인터넷에는 거의 모든 필요한 강의가 있다. 예를 들면 유튜브(YouTube)에서 항상 최고의 강의를 들을 수 있다. 시간과 공간의 제약도 없다. 듣다가 모르는 것이 있으면 잠시 정지시키고 생각하면 된다. 필요한 자료를 찾다가 다시 클릭하면 된다. 물론 문제도 있지만 개선하면 되고 득이 훨씬 많다.

요사이 알려지고 있는 MOOC(Massive Online Open Course)를 주목해야 한다. 이 강의는 세계 유명대학에서 모두 참여해 아주 질 높은 강의를 제공한다. 대부분 무료고 일정 수준의 평가를 받으면 수강증도 준다. 이 수강증은 인도 등 교육 기회가 적은 지역에서 좋은 방향으로 이용되고 있다. 많은 강의를 인터넷 강의로 대체할 필요가 있다. 대학의 강의실은 오프라인에서 만나는 장소 토론하는 장소로 기능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사용돼야 한다. 많은 큰 강의를 사용할 수 있다.

또한 대학의 경계를 아주 크게 할 필요가 있다. 지역에 있는 카이스트, 충남대학 등 대학의 문호를 개방해 지역의 유능한 인재들이 참여하는 대학으로 개조할 필요가 있다. 어느 대학을 졸업했는가 보다 무엇을 배웠고 무엇을 할 수 있는가가 평가 기준이 돼야 한다. 이러한 혁신을 통해 교육의 중심이 되고 미래를 개척할 수 있는 인재를 배출하는 앞선 동력이 될 수 있다. 대학은 큰 배움터가 돼야 한다. 지역의 많은 예술 문학 등 진정한 새로운 분야를 개척할 수 있는 분야가 자연스럽게 새로운 큰 대학에서 성장할 날을 기대한다.

김양한 KAIST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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