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사회 "피해자에 사과 없이 계산된 정치적 행동"

성폭력 의혹이 제기된 안희정 전 충남지사가 지난 9일 검찰에 자진 출두한 가운데 안 전 지사의 행보를 두고 제왕적 행태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는 비난이 쏟아지고 있다.

통상적으로 검찰이 수사 준비를 마치고 소환 통보를 하는 절차를 깬데다 일방적인 출석 통보 후 스스로 조사에 임하자 오만을 등에 업은 권력자의 행동이라는 시선이다.

안 전 지사는 비서를 성폭행했다는 의혹이 제기된 후 잠적 나흘 만인 지난 9일 검찰에 출석해 다음 날 오전 2시 30분까지 9시간 30분에 걸친 조사를 받았다.

안 전 지사는 지난해 6월부터 올해 2월까지 자신의 수행비서였던 김지은(33)씨를 러시아, 스위스, 서울 등에서 4차례에 걸쳐 성폭행하고 수시로 성추행한 혐의를 받고 있다.

서울서부지검 여성아동범죄조사부(오정희 부장검사)는 이날 안 전 지사를 상대로 실제 성폭력 여부와 범행 시점, 경위 등을 집중적으로 추궁한 것으로 알려졌다.

안 전 지사는 조사를 마친 후 혐의를 인정했는지 묻는 질문에 "앞으로 검찰 조사에서 제가 가지고 있던 객관적인 사실에 대해 사실대로 말하겠다. 모욕감과 배신감을 느꼈을 많은 분께 정말로 죄송하다"고 말을 아꼈다.

안 전 지사가 출두한 이날은 안 전 지사에게 성폭행을 당했다고 폭로한 정무비서 김 씨가 검찰에서 피해자 조사를 받고 있어 고소인과 피의자가 동시에 검찰 조사를 받는 이례적 모습이 연출됐다.

안 전 지사의 이번 자진 출두에 지역 사회는 싸늘한 반응을 내보이고 있다.

지역 여성단체의 한 관계자는 "검찰 출두 당시 모습을 보면 피해자에 대한 사과는 전혀 없이 국민과 도민에 사과를 했다"며 "사죄 대상이 잘못됐으며 검찰에 자진 출두한 진정성이 의심스럽다"고 비판했다. 충남도민인 조미나(36·충남 당진시)씨는 "피해자에게 사과하는 게 먼저 아닌가. 검찰에 자진출두하겠다는 것부터 정치적인 계산에 의한 행동"이라며 "실망을 넘어 분노가 인다"고 비난의 목소리를 높였다.

법조계에서는 안 전 지사의 이번 출두를 이례적이라고 평하면서 성폭력 사태가 확대 재생산되는 것을 방지키 위한 전략적 행보로 분석했다.

임성문 변호사는 "왜 이렇게 빨리 자진출석을 했을까라는 시기적 관점을 살펴본다면 외부에서는 어떤 내용의 말을 해도 2차 피해 문제로 연결되거나 변명으로 치부돼 섣불리 말을 하기 어렵다. 피해자와 관련한 내용도 확대·재생산될 수도 있다"며 "그러나 조사를 바로 시작하면 고소인과 피의자가 수사절차 내에서만 다툼을 해야 하고 밖에는 발설하면 안되기 때문에 확인되지 않은 상태에서 내용이 일파만파 퍼지는 것을 막기 위한 포석이 아닐까 관측해볼 수 있다"고 말했다.

안 전 지사의 출석 통보를 검찰이 이례적으로 받아준 점에 대해서 임 변호사는 "검찰이든 경찰이든 수사 기관은 사건에 대한 조사 계획이 있기 때문에 임의적으로 출석한다고 해서 받아주는 경우는 드물다"며 "이번 사건은 검찰이 전담수사팀을 구성했고 다시 안 전 지사를 돌려보내는 것에 대해 모양새가 이상해질 수 있어 수용한 것으로 보인다"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안 전 지사의 진술내용에 따라 고소인과 서로 배치되는 부분이 있다면 객관적 증거를 갖춘 다음 추가 소환될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한편 김씨는 지난 5일 안 전 지사의 성폭행 의혹을 폭로하고 이튿날 검찰에 업무상 위력에 의한 추행, 위계에 의한 간음 혐의 등으로 정식 고소했다. 강은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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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은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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