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슬비
이슬비
얼마 전 8년간 몸담고 있던 잡지사로부터 원고 청탁을 받았다. 미술잡지 기자를 그만두고 육아에 전념하는 일명 `경력단절 여성`으로서의 고민을 풀어내는 에세이 같은 글이었다. 그동안 육아에 집중하며 바쁘게 산다고 하루하루 내면을 정리하지 못하고 허덕이며 살아왔는데 오랜만에 나를 되돌아볼 수 있는 기회였다. 사실 이 칼럼 연재 글을 쓰겠다고 한 것도 육아하며 사라지는 나 자신을 붙잡고 싶다는 욕망 때문이다. 독박 육아는 곧 경력 단절, 인간관계 단절을 의미한다. 아이는 하루가 다르게 성장하는데 정작 나 자신은 여러 면에서 퇴보하는 것처럼 느껴진다. 서툰 집안일, 엄마 노릇을 하며 허탈감과 우울감에 빠지기도 하고 언제, 어떻게 경력을 다시 이어 가야 할지 조급한 마음이 들기도 한다.

하지만 그렇게 생각할 틈도 많지 않다. 자본주의로 무장한 한국 사회는 모든 사람이 경쟁에 뛰어들기를 강요하는데 엄마가 되는 것 역시 새로운 경쟁의 시작을 의미한다. 남들보다 아이를 잘 키워내야 한다는 모성과 부추겨진 소비 사이에서 엄마들은 고군분투하지만 늘 불안하고 자책한다. 한국 사회에서 엄마는 조금만 실수해도 `맘충`이라는 소리를 듣고, 자신의 감정을 조금 솔직하게 드러내면 `모성애가 없는 엄마`, `이기적인 여자` 취급을 받는다.

그동안 페미니즘 앞에서 우물쭈물했던 나는 육아를 하며 한국 사회의 모순을 뼈저리게 느꼈고 진정한 페미니스트가 되어야겠다고 결심했다. 그리고 고립된 엄마들 사이에 다양한 네트워크가 절대적으로 필요하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엄마이면서 나를 잃지 않는 건 매 순간 갈등의 연속이자 풀리지 않을 것 같은 모순과 투쟁하는 것과 같다. 나에게 육아는 하나의 생명을 통해 함께 하는 삶을 배우는 길이자, 결코 쉽지 않겠지만 남성 중심의 가부장제, 자본주의 그리고 신자유주의에 저항할 수 있는 통로를 만드는 일일 것이다. 엄마와 아빠가 서로 연대하며 아이와 충만한 감정을 교류할 수 있는 진정 행복한 사회여, 어서 오라! 이슬비 미술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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