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의 화가 들라로쉬(Paul Delaroche, 1797-1859)는 역사화가로, 사진을 이야기 할 때 소개되는 화가이다. 사진기술을 처음 접한 그는 `이 순간부터 회화의 역사는 막을 내릴 것`이라며 비관했다. 실제로 사진이 등장한 초기에는 초상화를 그리던 화가들의 일이 줄어들었다. 하지만 이내 화가들은 초상화를 그릴 때 고객들이 오랜 시간 앉아 있지 않아도 되도록 사진을 사용하기 시작했다. 사진을 보며 그림을 그린 후에 실물을 보고 완성하는 방향으로 초상화 작업방식을 바꾼 것이다. 들라로쉬의 생각과 반대로 사진은 회화 작업에 좋은 도구로 활용되고 있다.

4차 산업혁명 기술들에 대한 시각은 200년 전 들라로쉬가 바라본 사진기술에 대한 관점과 유사한 것 같다. 낙관적인 예측도 많지만, 4차 산업혁명의 물결에 현재 직업의 50% 이상이 사라져 일자리가 줄어들 것이란 비관적인 예측이 사람들의 마음을 더 강하게 붙잡고 있다.

흔히 4차 산업혁명을 설명할 때면 대표적인 몇몇 기술들을 이용하곤 한다. 인공지능, 로봇기술, 무인화 기술 등이 바로 그것이다. 이러한 기술들이 사물인터넷, 빅데이터, 클라우드, 모바일, 3D 프린팅, 초고속 통신 등 고도화된 기술과 융합하여 현재의 정보화 시대를 뛰어넘는 사회 변화를 가져올 것으로 기대된다.

사실, 4차 산업혁명의 주요 기술들은 대부분 10여 년 전부터 잘 알려져 있던 기술들이다. 이를테면, 3D 프린팅 기술의 경우 대표적인 핵심 특허가 풀린 건 이미 오래전 일이다. 빅데이터를 통한 분석도 경제, 사회 및 과학분석 분야에서 이미 활용돼 온 기법으로, 최근 탄생한 기술은 아니다. 알파고 같은 인공지능 기술이나 모바일 기술 또한 느닷없이 나타난 혁명적 신기술은 아니다. 이미 알려져 온 기술들이 몇 년 사이 4차 산업혁명의 이름으로 큰 주목을 받기 시작한 것으로 보아야 한다.

이러한 기술들이 4차 산업혁명으로 주목받는 이유는 이들 기술들이 `사람`을 포함하기 시작했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예를 들어 기존의 로봇·자동화 기술은 인간 노동자를 줄여 생산성을 높이는 기술로 개발돼 왔다. 3D 프린팅 역시 쾌속조형기술(Rapid Proto typing)로, 가공의 용이성으로 인해 부각되기 시작한 기술이었다.

그런데 이제 이 기술들이 사람과 상호작용을 주고받으며 비로소 진정한 가치를 갖게 된다. 4차 산업혁명에서의 로봇기술은 생산 현장에서 노동자와 동일한 공간과 시간 속에서 협력하고 공존하며 사람과 함께 움직이고 협력하도록 개발되고 있다. 3D 프린팅 기술은 단순히 생산의 수월성에 무게를 두는 것에서 벗어나 사람들의 개별적이고 특성화된 수요를 만족시키는 제조기술로 활용되며 4차 산업혁명의 주요기술로 관심 받고 있다. 장애를 가진 `한명의 아이`를 위해 3D 프린터로 의수를 만들어 주는 동영상을 통해 사람들은 3D프린팅 기술에 더 열광했고 4차 산업혁명의 모습을 더 쉽게 상상할 수 있게 되었다.

이처럼 4차 산업혁명 시대의 기술 개발 방향과 우수성은 개발된 기술이 사람을 포함하고 있는가를 통해 판가름 날 것이다. 로봇의 경우에도 공장에서 사람을 밀어내는 것이 아니라 사람과 함께 일할 수 있어야 혁신할 수 있다. 리씽크로보틱스의 소이어 같은 협업형 로봇의 성공이 바로 그 사례 중 하나다. 협동로봇은 로봇과 사람 사이의 칸막이를 걷어내고 같은 공간에서 협업할 수 있음을 증명하고 있다. 모바일 기술이나 IoT, 빅데이터 분석 기술도 마찬가지로 사람과 함께 하는 기술로 발전할 때 성공 가능성이 높아 질 수 있다. 200여 년 전 사진기술과 초상화가의 관계가 그랬듯 4차 산업혁명도 사람과 기술의 협력 모델을 찾는 방향으로 발전해갈 것이다. 최현석 한국생산기술연구원 전략기획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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