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폭력을 고발하는 `미투` 운동이 들불처럼 번지고 있다. 검찰의 한 여성검사로부터 붙은 이 불은 법조계와 문화예술계, 종교계 할 것 없이 사회전반으로 확산되고 있다. 불은 좀처럼 꺼질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 모든 것(성폭력 및 성추행 등이 까발라지는 등)이 폭로되고서야 불길이 잡힐 기세다. 들불처럼 이는 미투 운동을 접하면서 `하인리히 법칙`이 떠오른다. 1건의 치명적인 사건이 나기 전 이미 같은 원인으로 29건의 작은 사고가 발생하고, 300여 건의 이상 징후가 나타나게 된다는 `1:29:300 법칙` 말이다. 이 법칙은 커다란 사건이나 위험은 단번에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 작은 사전 징후들이 전조 현상으로 나타난다는 점을 보여준다. 미투 운동 역시 사전 징후들이 곳곳에서 나타났지만 미리 대처하지 못하고 무시한 탓에 걷잡을 수 없이 번졌다. 성폭력·성폭행 등 성 범죄에는 여러 전조현상이 있다. 대표적인 게 스토킹이나 데이트 폭력이다. 스토킹은 상대방의 의사와 관계없이 자신의 소유욕을 충족하기 위해 남을 괴롭히는 행위로 유명 연예인 등 스타들 주변에서 주로 일어났으나 이젠 일반에도 만연된 사회 범죄다.

실제 2016년 4월 결별을 요구한 30대 여자친구에게 앙심을 품은 전 남자친구가 여자친구 집을 찾아가 흉기로 찔러 살해한 사건이 있었다. 작년 1월에는 동거하던 여성이 동거남의 폭력을 못 이겨 남친을 경찰에 신고, 귀가조치했지만 남친이 재차 여친을 찾아가 급기야 살해한 사건에서 보듯 스토킹·데이트 폭력은 납치, 감금, 살인 등 흉악 범죄로 발전하고 있다는 게 문제다. 경찰청 통계에 따르면 최근 3년 동안 스토킹은 46%, 데이트 폭력은 54.4%가 늘었다. 2014년 스토킹 범죄 검거는 297건에서 2015년 363건, 2016년 555건으로 늘다가 작년 436건으로 떨어졌다. 데이트 폭력은 스토킹 보다 많은 2014년 6675건, 2015년 7692건, 2016년 8367건, 지난해 1만 303건으로 급증했다. 과거에 비해 피해자 신고가 늘고 있지만 보복이 두려워 피해자가 여전히 신고하지 않은 경우도 많아 실제로는 스토킹·데이트 폭력 범죄는 더 많을 것이란 추정이다. 그런데도 스토팅 범죄는 처벌 기준 등 법적근거가 없어 범칙금 10만 원 미만의 경미한 범죄로 처벌하는 데 그친다. 스토킹은 위해정도가 눈에 보이지 않아 피해자 신변보호를 위한 현장조치에도 한계가 있다. 데이트 폭력 역시 신뢰 관계를 바탕으로 상대방의 비밀과 약점을 악용하는 경우가 흔하지만 죄질에 비해 처벌이 미흡한 실정이다.

뒤늦게 심각성을 깨달은 정부는 스토킹 범죄의 정의와 범죄유형 등을 명확히 하고 범칙금 수준이 아닌 징역이나 벌금으로 처벌할 수 있도록 하는 `스토킹처벌법`을 만든다는 계획이다. 이 법이 제정돼 시행되면 스토킹 행위자에게 피해자에 대한 접근금지나 통신금지 등의 조치가 취해진다. 경찰은 스토킹에도 112신고 시스템 상 별도 코드를 부여해 관리하고 신고접수에서부터 수사 등 각 단계별 스토킹 사건에 대한 종합대응 지침 및 매뉴얼을 마련해 강력 단속할 계획이다. 데이트 폭력은 양형단계에서 적정 형량이 선고될 수 있게 엄정한 사건처리 기준을 마련해 적용키로 했다.

그러나 상대방은 불안감을 느끼는데 연애 감정을 갖고 쫓아다니는 것까지 형사적으로 처벌하는 게 맞냐는 찬반 양론도 있다. 반면에 우월적 지위나 권력을 이용한 성적 폭력이 잇달아 공개되고 있는 가운데 권력 앞에서 저항하기 어려운 약자에게 권력을 악용해 폭력을 행사하는 경우는 가중 처벌해야 한다는 지적이 높다.

하인리히 법칙은 작은 징후라고 해서 이를 무시하거나 적극적으로 개선하지 않으면 결국 손을 쓸 수 없는 큰 위험으로까지 닥치게 된다는 교훈을 준다. 사회 전반에 불고 있는 성폭력 역시 스토킹이나 데이트 폭력에서 비롯된다는 점에서 경각심이 요구된다. 성 범죄를 줄일 수 있는 `스토킹처벌법`을 빨리 제정해야 하는 이유다.

곽상훈 취재1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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