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세기 정보화시대에는 전쟁도 평화도 아닌 회색지대에서의 `정보전쟁`이 치열하게 전개되고 있다. 이러한 전쟁은 적의 군대를 상대로 한 전쟁이 아니라, 상대국 지도자와 국민, 그리고 국제사회를 대상으로 하여 정보전, 심리전, 여론전, 법률전 등 비군사적 투쟁으로 이루어진다. 우리의 의지를 적에게 강요하기 위해 무력을 사용하는 것이 전쟁이라면, 무력을 사용하지 않고서 우리의 의지를 강요하는 전쟁이 바로 `정보전쟁`인 것이다.

정보전쟁의 원리는 간단하다. 먼저 정보의 우세를 달성한다. 그리고 정보를 조작하거나 위조해 그럴듯한 `내러티브`로 만들어 상대국에게 유포시킨다. 이 때 `내러티브`는 일종의 `사이코 바이러스`의 역할을 한다. 즉 컴퓨터 바이러스가 컴퓨터에 침투해 오작동을 야기하듯이 `사이코 바이러스`는 상대국 지도자와 국민들의 인지 및 인식에 오작동을 야기해 스스로 불리한 정책결정을 하도록 유도하게 된다. 실제로 러시아는 이러한 정보전쟁을 통해 군사력을 사용하지 않고도 크리미아 반도를 합병할 수 있었으며, 중국도 해양영토분쟁과 대만문제, 심지어 사드배치에 대해서도 여론전과 심리전을 활용하고 있다.

평창올림픽이 세계 평화의 제전으로서 성공적으로 치러졌지만, 그 이면에는 북한의 대남 정보전쟁, 혹은 정보심리전이 치열하게 전개됐다. 국제제재로 인해 난관에 봉착한 북한은 이번 올림픽을 통해 뭔가 돌파구를 찾으려 했다. 그리고 그 방안은 `비핵화 없는 남북관계 개선`이었다. 비핵화를 강압하고 있는 미국과의 대화가 불가능한 상황에서 북한은 남북관계를 개선해 국제재제를 약화시키고 돈줄을 확보할 통로를 열 수 있으며, 미국의 대북압박을 무력화하고 군사적 옵션 가능성을 차단할 수 있다고 판단한 것이다.

북한은 이번 평창올림픽을 통해 우리 사회 내에 우호적이고 동정적인 여론을 조성하려고 했다. 현송월을 단장으로 하는 공연단을 보내고 230여 명의 여성들로 구성된 응원단을 파견한 것은 필경 13년 전 `미녀 응원단`에 대한 우리 국민들의 뜨거운 관심을 염두에 두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동정적인 여론이 조성되면 이에 힘입어 `비핵화 없는 남북관계 개선`을 본격화하고자 했다. 김여정이 방한해 수차례 문재인 대통령의 평양방문을 언급한 것은 이러한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그러나 이번 평창올림픽에서 북한이 구사한 정보심리전은 정교하지 못하고 엉성했다. 현송월의 공연은 감동을 주기보다는 뭔가 억지로 연출하려는 가식적인 인상을 주었다. 북한 응원단의 일사불란한 응원과 야외공연은 뜨거운 반향을 낳기보다는 어딘가 어색하고 어설픈 느낌, 그리고 응원단을 둘러싼 북한 요원들의 통제와 감시는 이들이 처한 불쌍한 처지를 연상케 했다. 이들이 외쳤던 민족과 통일, 그리고 `우리는 하나다`라는 구호는 진정성을 전달하기보다는 누군가 이들을 조종하고 있다는 인상만 주었다.

북한도 뭔가 잘못되었다는 것을 느꼈을 것이다. 그들이 의도했던 한국 사회 내 민족에 대한 향수, 통일에 대한 갈망, 그리고 평화공세에 대한 호응이 없었기 때문이다. 폐막식에 대남 군사도발의 주역인 김영철을 보낸 것은 아마도 현송월과 김여정으로 별다른 효과를 거두지 못한 상황에서 마지막으로 남북관계를 `겁박`하려는 것으로 밖에 볼 수 없다.

무엇보다도 이번에 북한의 정보심리전이 수포로 돌아간 것은 바로 우리의 성숙한 국민의식 때문이다. 우리 국민들은 북한이 민족 대 반민족, 대화 대 대결, 평화 대 핵전쟁이라는 세력 대결 구도로 몰아가려는 의도를 간파하고 있다. 북한이 외치는 민족과 통일이라는 주장이 거짓된 메시지임을 알아차리고 있다. 북한이 핵은 한국이 아닌 미국을 겨냥한 것이라고 하지만 우리 국민들은 북한 핵이 우리 안보를 위협할 것임을 명확히 인식하고 있다. 그래서 애초에 적지 않은 사람들이 우려했던 것과 달리 우리는 북한의 기만적 정보심리전에 현혹되지 않았다. 이러한 측면에서 이번 평창올림픽은 우리 국민들의 값진 승리라고 할 수 있다. 박창희 국방대 군사전략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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