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晉)나라의 21대 군주였던 헌공(獻公)이 괵나라를 공격하려 했으나 그 길목에 우(虞)나라가 있어 걸림돌로 작용했다. 대부 순식이 말했다. "왕께서 수극의 옥과 굴 땅에서 생산된 명마를 우공(虞公)에게 뇌물로 주고 길을 빌려달라고 하면 반드시 우리에게 길을 빌려 줄 것입니다"

헌공이 말했다. "수극의 옥은 우리 선군(先君, 돌아가신 부친)의 보물이며 굴 땅의 명마는 과인의 준마인데, 만일 우리의 패물만 받고 우리에게 길을 빌려주지 않는다면 장차 어찌하겠소?"

헌공의 말에 순식은 우공이 뇌물을 받고 길도 빌려줄 것이라고 확신하고 사소한 이익에 얽매이지 말라고 직언했다. 그러자 헌공은 순식을 시켜 수극의 옥과 굴산의 말을 우공에게 뇌물로 바치게 했다. 순식이 뇌물을 갖고 오자, 우공은 옥과 준마를 가지고 싶은 마음에 길을 빌려달라는 요구를 들어주려고 했다. 이때 궁지기라는 신하가 간언하여 말했다.

"허락해서는 안 됩니다. 우리 우나라에 괵나라가 있다는 것은 마치 수레에 보(輔·수레에 무거운 짐을 실을 때 바퀴 양쪽에 묶어 튼튼하게 해주는 곧은 나무) 가 있는 것과 같습니다. 보는 수레에 의지하고 수레 또한 보에 의지하니(輔車相依) 우나라와 괵나라의 형세가 바로 이와 같습니다. 만일 길을 빌려준다면 괵나라는 아침에 망하고 우나라는 그날 저녁에 뒤따라 망할 것입니다."(한비자(韓非子) 중 `십과(十過)`편)

서로 가까운 관계에 있는 괵나라와 우나라는 서로가 방패막이가 되어 힘이 되어 주고 있는데, 어느 한쪽이 망하면 다른 나라도 영향을 받아 온전하기 어렵다는 말이었다. 더군다나 궁지기가 보기에 옥과 준마는 있어도 그만 없어도 그만인 사치품에 불과한데, 우공이 아주 하찮은 물욕에 사로잡혀 길을 빌려주려는 현실을 빗댄 것이다. 물론 우공이 궁지기의 말을 들을 리 만무했다. 후환을 두려워한 궁지기는 가족까지 데리고 나라를 떠나게 된다.

결과는 어찌 되었을까? 순식은 무난히 괵나라를 쳐서 이기고 자기 나라로 돌아온 지 3년 만에 강력해진 군사력으로 우나라까지 정벌하고 지난번에 바쳤던 옥과 말까지 되찾아와 헌공에게 바쳤다. 헌공은 "말은 늙었으나 옥은 그대로구려"라고 하면서 대단히 기뻐했다. 순식도 공에 힘입어 헌공이 죽고 나서도 해제(奚齊)와 탁자(卓子)를 보좌하는 큰 역할을 담당하게 됐다.

과연 헌공과 우공의 운명을 가른 것은 무엇인가? 헌공은 신하의 말을 듣고 자신의 사욕을 과감히 버렸으나, 우공은 충신의 간언에도 불구하고 아주 하찮은 사욕을 채우려하다가 나라마저 잃게 된 것이다.

아주 작은 이익 때문에 대사를 그르치지 말라

천길 제방도 개미구멍에서 무너진다는 말이 있다. 꽤 사소하고 하찮은 이익에 불과해 보이는 것들이 더 무섭게 들물처럼 번져나가 걷잡을 수 없는 힘을 영향력을 갖게 된다.

개인이든 조직이든 그 조직을 어렵게 만들고 심지어 파국으로 치닫게 하는 것 중에서 맨 처음부터 대단한 것은 거의 없다. 얼핏 보면 시답지 않거나 미세먼지만도 못해 보이는 것들이 그 이면에서 무시무시한 잠재력을 가지고 피어올라 용암처럼 분출되어 표출된다. 그래서 한비자는 이렇게 충고한다.

"나무가 부러지는 것은 반드시 좀 벌레를 통해서이고, 담장이 무너지는 것은 반드시 틈을 통해서다. 비록 나무에 좀 벌레가 먹었다 하더라도 강한 바람이 불지 않으면 부러지지 않을 것이고, 벽에 틈이 생겼다 하더라도 큰 비가 내리지 않으면 무너지지 않는다." (`한비자 중 `망징(亡徵)`)

문제는 그런 조짐을 주변에서는 아는데 당사자는 모르거나 애처 모른 채 외면하다가 일이 터지고 나서야 수습하려 든다는 것이다. 때는 이미 늦었는데도 말이다. 김원중 단국대 한문교육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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