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용훈 과장
문용훈 과장
기억이란 망각의 강에서 가라앉지 않고 살아남은 인상의 결정체라 했던가. 인연이 있으면 천리를 떨어져 있어도 만나고, 인연이 없으면 얼굴을 맞대도 못 만난다(有緣千里來相會 無緣對面不相逢) 했다. 살면서 잊고 싶은 기억이 있지만 오랫동안 부여잡고 싶은 기억도 있다. 평생 한 직장에서 수없이 많은 사람들과 만나고 헤어지지만 언제 만나도 반가운 사람이 있는가 하면 이름은 고사하고 얼굴조차 희미한 사람도 있다. 그래서 인간의 삶은 인연의 집합체라 하는지 모른다.

지난 연초에 선배 한분이 사무실로 찾아 왔다. 오래전에 공직에서 퇴직했지만 지금도 왕성한 문학 활동을 하고 있는 시인이자 문인화가다. 현직에 계실 때 늘 바른 삶의 자세로 후배 공무원들의 본보기가 된 분이었다. 찾아온 이유인 즉 최근에 발간한 책을 한 권 주기 위해서였는데 대전시가 지원한 `원로예술인 창작활동 지원사업`에 공모해 시조집을 출간하게 됐다며 매우 즐거워했다.

시는 대전의 문화예술계를 이끌어 오신 원로예술인에게 자긍심을 심어주고 작품 활동을 계속할 수 있는 프로젝트가 뭔가를 고민하다가 원로예술인 창작활동 지원금을 지난 연말에 확보, 우리 지역에서 30년 이상 문화예술 활동을 해 오신 만 60세 이상의 예술인들에게 1인당 최대 600만 원까지 지원했다. 이번 공모를 통해 선정된 문화예술인은 문학 46명, 미술 10명, 서예 2명, 사진 2명, 음악 2명, 국악·무용·연극 각각 1명씩으로 총 64명이 혜택을 받았다.

또 이 분들의 작품활동 전시회(대전예술 70+초 대전)도 지난 1월에 대전예술가의 집에서 많은 시민들의 호응 속에 개최했다. 다만 충분한 사업기간을 주지 못하다 보니 일부 분야에 편중되고 더 많은 분들이 참가하지 못한 아쉬움도 있었지만 80세에 난생 처음 작품집을 발간했다는 분들이 있을 만큼 반응이 뜨거웠다. 지원금의 많고 적음을 떠나 원로 예술인들에게 인정감을 주었다는 점에서 더 큰 의미가 있는 사업이었다.

문화체육관광부가 2016년 3월에 발간한 `2015년 예술인 실태조사`에 의하면 예술인이 예술을 통해 벌어들인 연간 수입은 평균 1255만 원으로 예술활동만으로는 생계를 유지하기 어려운 현실이며, 예술인의 절반이 예술활동 이외의 다른 직업에 종사하는 겸업 예술인이 많은 것으로 나타났다.

정부에서는 2011년에 예술인 복지법을 제정하고 이듬해에 한국예술인복지재단을 설립, 예술인의 복지 향상을 위해 노력해왔다. 뿐만 아니라 예술창작에 공이 있는 예술가를 우대하고 그들의 창작활동을 지원하기 위해 한국전쟁 직후인 1954년에 대한민국 예술원이 설립돼 매달 일정액의 수당 지급과 함께 창작활동도 지원하는데 100여 명의 원로예술인이 예우를 받고 있다. 반면 우리 지역 예술인에 대한 혜택은 극히 미미한 수준이다.

사람이 늙는다는 것은 고고학의 층위처럼 인생의 경험이 한층 한층 쌓여 가는 과정이라고 한다. 나이를 먹었다고 과거의 경험과 기억이 결코 사라지지 않는다는 얘기다. 미켈란젤로가 불후의 대작 `최후의 심판`을 완성한 나이나 칸트가 `판단력의 비판`으로 세계 3대 비판서를 완성 한 때가 66세요, 에디슨이 세계최초로 측음기를 발명한 때가 67세다. 평균 수명이 지금의 절반도 안 되는 시대임을 감안하면 대단한 노익장이다.

사람이 사람에게 저지르는 가장 큰 죄악은 미움이 아니라 무관심이요, 늙음은 나이가 말해주는 게 아니라 후회가 꿈을 대신하는 순간부터 늙기 시작하며, 우리가 노인을 대하는 태도는 다음 세대가 우리를 대하는 태도라 했다. 원로예술인들이 우대받고 창작활동에 전념할 수 있는 풍토가 찾아오기를 꿈꿔본다. 문용훈 대전시 문화예술과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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