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을 먹어도 병이 잘 낫지 않는다며 `약을 그렇게 먹었는데 왜 이리 병이 안 나아요`, `약을 잘못 주신 것 아니에요`라고 불평하는 사람들이 있다. 병이 잘 낫지 않는다고 해서 약이나 의사, 약사의 탓으로 돌리는 것이다. 그러나 그것이 약이나 의사, 약사의 잘못만은 아니다. 약의 힘만으로 병이 낫지는 않기 때문이다. 같은 약으로 잘 낫는 환자도 분명히 있다. 이처럼 약이 모든 환자에게 같은 효과를 내지는 않는다.

이런 이유는 다음과 같이 생각할 수 있다. 자연재해나 천재지변이 일어나 그곳이 폐허처럼 변한 모습을 TV로 보며 자연의 힘은 참 위대하다고들 느낀다. 세상의 많은 일은 자연의 법칙을 따라 일어난다. 경사면에 공을 놓으면 공은 아래로 굴러 내려간다. 이것은 자연 현상인 중력 때문이다. 그런데 경사면에 울타리를 치면 공은 더는 굴러 내려가지 못한다. 울타리가 중력을 방해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울타리만 없애면 공은 금방 굴러 내려간다. 이처럼 자연 현상의 방해물을 없애면 자연 현상은 바로 회복된다. 공이 더 잘 굴러가도록 중력을 더 강하게 할 수는 없다.

자연의 일부인 인체에서도 자연 현상은 끝없이 일어난다. 음식을 먹으면 몸에서 소화, 흡수, 대사 등이 일어나며 생명이 유지된다. 심장, 호흡기, 소화기 등 여러 장기가 잠시도 쉬지 않고 한 치의 오차 없이 움직이는 것도 인체에서 일어나는 자연 현상이다. 이런 자연 현상에는 호르몬 등의 내분비 물질과 신경계 등이 관여한다. 이런 것이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잘 일어나는 것이 건강한 상태이다. 병에 걸리면 내분비 물질이나 신경계 등의 작용이 방해받거나, 특정 생리 물질이 많아지거나 부족해져서 몸에서 자연 현상이 제대로 일어나지 못한다.

약을 먹어 병을 치료하는 것도 자연 현상을 이용하는 것이다. 약으로 내분비 물질이나 신경계 작용의 방해물을 없애거나 부족한 것을 보충해 자연 현상이 회복되게 한다. 약을 먹어 자연 현상의 방해물을 없애거나 자연 현상에 필요한 것을 공급하면 자연 현상이 정상적으로 회복된다. 그런데 자연 현상이 회복되려면 시간이 필요할 수 있으므로 약을 오래 먹어야 할 수도 있다.

같은 약을 먹어도 환자마다 결과가 다르게 나타날 수 있다. 환자의 병이 낫거나 또는 심해지지 않도록 노력하는 것에 따라 약효에도 차이가 난다. 마치 같은 학교에서 똑같이 공부해도 학생마다 성적이 다른 것으로 비유할 수 있다. 배운 것만으로 되지 않고, 스스로 공부해야 성적을 올릴 수 있다.

약을 먹는 것은 운전 교습을 이론으로 배우는 것과 같다. 배우기만 해서는 운전할 수 없고 직접 운전대를 잡아봐야 운전을 할 수 있듯, 약을 먹으면서도 병이 낫도록 노력해야 병이 잘 낫는다. 공이 아닌 주사위는 경사면을 잘 굴러 내려가지 못한다. 이처럼 방해물이 없어져도 몸 상태와 본인의 노력 여하에 따라 치료 결과가 달라질 수 있다. 자연 현상을 회복할 능력이 부족하면 몸도 정상 상태를 유지하기 어렵다. 그래서 사람마다 약효도 다르게 나타난다.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다.`라는 서양 속담이 있다. 이는 약으로 병을 치료하는 데에도 똑같이 적용된다. 스스로는 아무 노력도 하지 않고 심지어 병이 심해질 행동을 일삼으며 약만으로 병 낫기를 바라는 것은 감나무 밑에 누워 감이 떨어지기만 기다리는 것이다.

영양 섭취를 고르게 하며 몸을 잘 관리하고 긍정적인 마음으로 생활하며 몸을 건강하게 유지하면 병에도 잘 걸리지 않고 혹시 걸려서 약을 먹어도 약효가 더 잘 나타날 수 있다. 정일영 십자약국 약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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