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윤수 피아니스트

전시회에 가서 그림을 볼 때 제목이 있는 작품들이 무제인 작품들보다 이해하기 쉬울 때가 많은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하다. 제목에서 이미 작가의 의도가 어느 정도 읽히기 때문일 것이다. 물론 베토벤의 `전원 교향곡`에 표현된 뻐꾸기 소리와 천둥번개 소리는 굳이 제목이나 가사가 필요 없는 보편적인 언어가 되었다고 할 수도 있지만, 음악 작품들 역시 제목이나 가사가 있는 작품들이 조금은 더 빨리, 더 정확하게 의미 전달이 된다. 그러나 예술에는 반드시 예외가 있고 필자는 그 예외로 고흐의 `해바라기`와 베토벤의 `열정 소나타`를 가장 먼저 떠올리게 된다.

고흐는 "`만약 그림을 그릴 능력이 없어` 라는 내면의 목소리가 들리면 그때는 반드시 그림을 그려라. 그 소리가 잠잠해 질 것이다"라고 말했다. 고흐는 화가였지만 보이는 것보다 들리는 것들에 귀 기울였고, 반면에 음악가인 베토벤은 청각을 잃어서의 이유도 있겠지만 보이는 것들을 묘사하고 음악으로 표현하고자 했던 작곡가였다.

해바라기는 따사롭고 눈부신 태양과 바라만 보아도 기분이 좋아지는 희망을 생각하게 하지만, 고흐의 해바라기는 해가 질 무렵의 고개 숙인 그것으로, 희망보다는 절망을, 빛보다는 어둠을 표현 한 듯하다. 그가 말했듯이, 해바라기는 해를 바라 볼 때는 희망과 삶, 그리고 빛을, 해가 사라진 후에는 죽음, 절망, 어둠을 느끼게 하는, 즉 하나의 해바라기가 삶의 모든 면면을 담아 표현 할 수 있다고 믿었기 때문이 아닐까.

베토벤의 `열정 소나타`는 삶에 대한 열정(passion)을 극적인 다이내믹과 방대한 음역대로 표현한 작품이다. 고흐가 너무나 살고 싶기에 역설적으로 귀를 자른 것처럼, 베토벤 역시 삶에 대한 강렬한 애착과 염원 때문에 유서를 써 보기도 하고 이러한 그의 살고자 하는 몸부림이 가장 작은 소리(피아니시모)로 시작했던 `열정 소나타`의 오프닝 주제가 가장 격동적인 큰 소리(포르티시모)로 거침없이 폭발한 것으로 보인다. 베토벤은 점점 악화되는 청각장애로 인한 절망이 주는 의미를 "열정"과 "수난곡"이라는 뜻을 동시에 갖고 있는 `passion`이라는 단어에서 찾고 극복하려고 한 것은 아닐까!

삶은 그 자체가 사라지지 않은 `수난`의 연속이지만 절망과 고통 속에서 희망이라는 작은 씨앗을 `열정`이라는 에너지로 키워나가며 삶의 의미를 찾아 가는 여정이라는 숨은 뜻을 읽을 수 있다. 베토벤이 들려야 하는 소리들, 그러나 그의 귀에는 들리지 않은 소리들을 눈으로 보고 악보를 통해 음악으로 표현했다면, 고흐는 내면의 소리를 보이는 것으로 표현했다.

<저작권자ⓒ대전일보사. 무단전재-재배포 금지>

저작권자 © 대전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