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에서 피해야 할 세가지 불행을 少年登科(소년등과), 壯年喪妻(장년상처), 老年窮乏(노년궁핍)이라고 어느 책에서 읽은 적이 있다. 한참 자녀를 교육시키고 살림을 키워나갈 장년의 나이에 배우자를 잃는 것은 생각만 해도 불행한 일이니 장년상처란 말은 공감이 간다. 노년궁핍 역시 경제적으로 준비가 안된 상태로 말년을 보내는 노인층을 보면서 피부에 와닿는 현실이 됐다. 그러나 젊은 나이에 큰 성공을 이룬다는 뜻의 소년등과가 어째서 피해야 할 불행일까.

아직 세상을 충분히 경험하지 못한 젊은이가 목표를 너무 일찍 이루다보니 성취를 향한 도전의식은 사라지고 주변의 질투와 견제는 더해진다. 세조때 남이(南怡)장군은 16세에 무과에 급제하고 승승장구해서 지금의 국방장관인 병조판서가 된다. 조선의 군권(軍權)을 잡았지만 수개월 뒤 역모에 가담했다는 모함을 받아 형장의 이슬로 사라지는데 그의 나이 27세였다. 마이크 타이슨이 헤비급 세계챔피언이 됐을 때 겨우 20세였고 1년 뒤 3개의 타이틀을 거머쥔 통합 챔피언에 올라 경기당 수백억 원의 대전료를 챙긴다. 그러나 25세에 방어전에서 패하고 이후 온갖 추문의 주인공이 된다. 소년등과가 왜 불행인지 보여주는 사례들이다.

역으로 젊은 시절에, 심지어는 어린 나이에, 큰 업적을 이루고 많은 이에게 긍정적 영향을 끼친 경우도 얼마든지 있다. 아인슈타인이 특수상대성이론 논문을 발표한 것은 26세 되던 해였다. 이 젊은 과학자의 연구성과가 인류의 큰 진보로 이어졌다는 사실을 누구도 부정하지 않는다. 모차르트는 다섯 살에 작곡을 시작해서 영화 `아마데우스`의 배경음악으로 우리 귀에 익숙한 교향곡 25번을 17세에 완성했다. 작가 최인호가 신춘문예를 통해 등단한 것은 고등학생 때였고 대표작 `별들의 고향`도 20대에 쓴 작품이다.

기업이나 상품도 비슷한 부침(浮沈)이 있다. 하이텔과 천리안은 1990년대에 등장해서 PC통신이라는 새로운 세상을 열었지만 인터넷 포털사이트에 밀려 사라졌다. 거꾸로 PC통신을 퇴장시키는 주역이었던 포털사이트 다음(daum)은 새로운 서비스를 탑재한 카카오에 인수됐다. 외국도 예외가 아니라서 한때 실리콘벨리를 상징하던 야후(yahoo)가 슬그머니 간판을 내렸고 모바일 메신저 돌풍을 일으켰던 트위터는 페이스북과 인스타그램에 밀리고 있다. 이들의 공통점은 초기에 엄청난 각광을 받았지만 순식간에 어려움을 겪거나 사라져버렸다는 점이다.

반대의 경우도 있다. 일본의 사찰전문 건축회사 `곤고구미(金剛組)`는 7세기에 시작해서 1400년이나 명맥을 유지하고 있다. 고구려 담징이 벽화를 그린 법륭사(法隆寺)와 오사카성(大坂城) 등 일본이 자랑하는 건축물을 지었다. 나일론을 처음 발명해서 의생활 혁명을 일으킨 듀폰(DUPONT)의 나이는 미국역사와 비슷한 216년인데 여전히 세계의 화학산업을 이끌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두산과 동화약품 정도가 100년이 넘는 기업이라고 한다.

대전도시공사는 1993년에 설립됐으니 25년 세월이 결코 가볍지 않다. 이제 겨우 뜻을 품기 시작하는 지학(志學·15세)도 아니고 실수가 용납되는 약관(弱冠·20세)도 아니다. 지역균형발전과 주거복지향상이라는 설립목적에 부합하는 뚜렷한 실적을 지역사회에 보여줘야 하고 미래 비전도 제시해야 한다.

출범 초기부터 거의 매년 최우수 공기업으로 선정되며 봄날을 만끽했지만 소년등과에 성공했던 많은 젊은이가 그러했듯이 높은 봉우리 다음에 깊은 계곡이 기다리고 있음을 간과하는 실수가 있었다. 다행히 노사가 합심하고 주요사업이 본궤도에 오르면서 지속경영을 위한 발판이 마련되고 있다. 지역사회의 관심과 격려만 보태진다면 또 한번의 도약으로 성원에 보답할 수 있으리라 자신한다. 20일은 대전도시공사 25번째 생일이었다. 유영균 대전도시공사 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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